[ 성구 ]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 내용 ]
흑인들의 인권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보면, 흑인 노예의 목에 엄마, 아빠, 아이들의 가격표를 각각 걸고, 노예를 사고자 하는 자가 나타날 때마다 채찍으로 후려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채찍에 맞을수록 노예는 더 힘차게 뛰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정도 매로는 끄떡하지 않는 힘 있는 노예임을 보여주어서 매매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팔려가고, 아내와 자녀들이 울부짖다가 잠시 후에는 아내가 또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고 그리고 울부짖는 자녀들이 각각 다른 사람들에 손에 끌려가는 그것이 노예들의 운명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바로 그런 노예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 이것은 낭만적이고 시적인 과장법이 아닙니다. 그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대접을 받으며 로마의 시민인 바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종 되는 것을 꿈꾸게 했을까요?
상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그림, 채찍에 맞으며, 그리고 정해진 잠자리도 없이 헛간에서 짐승처럼 뒹굴며 자고, 없으면 굶고, 주인을 위해서 하찮은 소유물 중의 하나로 대접을 받다가 죽어 가는 것이 노예의 일생임을 바울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을 노예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력에 못 이겨 노예가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은 사랑이신 하나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보다 풍부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랑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한 바울이 어떤 강제력에 사로잡힌 것처럼 자신이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겠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바울 자신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자녀를 불러 주셨고,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독특한 신앙고백일 뿐입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이 땅에서 살아가려 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자신도 세상으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버림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무도 강요하는 이 없어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인생의 또 다른 표현인 노예와 같은 삶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묵상 ]
사명자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삽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미워하는 세상은 사명자를 가만 놓아두지 않습니다. 사명에 사로잡히는 순간부터 그는 노예와 같이 무시당하게 될 것이고, 고단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노예로 살 준비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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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100일 교리 묵상: 은혜와 사명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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