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재난을 주는 위로자, 평안을 구하는 고난자
재난을 주는 위로자, 평안을 구하는 고난자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욥 16:6-17)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욥과 세 친구들을 첫 번째 대화 사이클을 살펴보았다. 그 대화에서 안타까운 점은 대화가 점점 진행되면서 점차 서로 모욕하고 저주하여 결국에는 회복하기 힘든 관계의 파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이는 그들에게 서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판단과 주장은 분명하였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소통의 기본은 나의 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욥과 세 친구의 두 번째 대화
오늘부터는 욥과 세 친구의 두 번째 대화의 사이클을 살펴보자. 두 번째 대화는 첫 번째에 비해 그 분량이 30% 줄었고 주장하는 내용도 크게 새로운 것이 없다. 오히려 첫 번째 대화보다 더욱 감정적이고 독선적인 내용이 많다.
엘리바스의 두 번째 말
엘리바스는 세 친구 중 가장 연장자로, 차분하고 논리적이며 날카로운 말을 했던 사람이다. 또한 욥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엘리바스가 두 번째 대화에서는 더는 논리와 신학, 이성으로 욥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모욕과 저주의 말로 굴복시키려 한다. 이는 사람의 마음이 상하면, 그 감정이 이성과 신앙마저 망가지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1) 욥의 말에 대한 모욕과 비판(1-16절)
먼저 엘리바스는 욥의 모든 말을 ‘헛된 지식’과 ‘무익한 말’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하며 비판한다. 욥이 지금 뱉고 있는 모든 말이 쓸모없고 헛된 것들이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욥 15:2-3).
그리고 욥이 당하는 고난을 그의 말과 연결시킨다. 이렇게 불경건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너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욥 15:5-6).
엘리바스는 욥의 말 때문에 우리와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깨어졌다고 말한다(욥 15:9-10). 그는 욥이 하나님을 향해 항변했던 말들을 비판하며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지혜롭게 여기는 말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욥 15:8), “하나님의 위로와 은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작은 것이냐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욥 15:11-13).
2) 죄인 욥을 향한 저주(17-35절)
이렇게 욥의 말을 비판한 엘리바스는 이제 말로 죄를 지은 욥을 향해 저주의 말을 쏟아낸다. 엘리바스는 욥이 당한 고난은 악인이 당하는 형벌이라고 말하며, 이것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내게서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이는 곧 지혜로운 자들이 전하여 준 것이니 그들의 조상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였느니라”(욥 15:17-18),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의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포악자의 햇수는 정해졌으므로”(욥 15:20).
이후 엘리바스는 인류 역사 속에서 악인이 당했던 모든 형벌을 욥이 당해야 마땅한다고 말하며 욥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당한 형벌을 이렇게 요약한다. “그의 귀에는 무서운 소리가 들리고 그가 평안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이르리니 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 칼날이 숨어서 기다리느니라 그는 헤매며 음식을 구하여 이르기를 어디 있느냐 하며 흑암의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환난과 역경이 그를 두렵게 하며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기리라”(욥 15:21-24).
현재의 고난에 더해 엘리바스는 욥의 미래의 삶 역시 고난일 것이라고 저주한다. “그는 황폐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무더기가 될 곳에 거주하였음이니라 그는 부요하지 못하고 재산이 보존되지 못하고 그의 소유가 땅에서 증식되지 못할 것이라”(욥 15:28-29), “그가 스스로 속아 허무한 것을 믿지 아니할 것은 허무한 것이 그의 보응이 될 것임이라 그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인즉 그의 가지가 푸르지 못하리니 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 경건하지 못한 무리는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며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욥 15:31-34).
이렇게 엘리바스는 욥이 당한 고난은 그의 죄악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고 그의 남은 인생 역시 하나님의 저주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욥의 대답(16-17장)
엘리바스의 폭력에 가까운 저주의 말을 들은 욥은 16-17장에 걸쳐 답변한다. 그런데 욥은 엘리바스와 달리 의외로 차분하게 대응한다.
1) 친구들을 향한 서운한 마음
먼저 욥은 친구들을 향한 서운한 마음과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욥 16:2-3).
자신을 위로하러 왔다가 저주하는 친구들을 향해 욥은 ‘재난을 주는 위로자’라고 조롱한다. 원문의 의미는 ‘재난의 위로자’이다. 사실 이 두 단어는 함께할 수 없는 단어다. 위로는 평안을 주는 것이지 재난을 주기 위해 위로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욥은 특별히 이전과 달리 감정적으로 대하는 엘리바스를 향해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렇게 말하는가’라며 서운한 마음을 토로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 어린 충고를 한다(16:4-5). 만약 자신의 친구가 고난 당하고 있다면 자신은 위로의 말로 격려하고 그의 아픔에 공감하였을 것이라며 친구들을 향해 서운한 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본심을 말한다. 욥은 자신이 왜 그렇게 첫 번째 대화에서 거친 말을 하였는지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욥 16:6).
누구에게 말을 하여 위로를 얻으려 해도 자신의 근심이 풀어지지 않았고, 그것을 이겨보려고 입을 닫아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평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
이제 욥은 자신이 고난 당한 이유가 하나님의 불공정한 심판 때문이라며 다시 한번 하나님을 원망하며 절규한다.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16:7-8).
7절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라는 표현은 ‘주께서 나를 닳아 없어지게 하시고’의 의미다. 옷감이나 가죽이 닳아 연약해지듯 자신의 삶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욥이 자신을 치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장 처절하게 표현한 곳은 12-13절이다.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욥 16:12-13).
욥은 하나님의 고난이라는 화살이 쉴 새 없이 쏟아져 자신의 온 몸이 그 화살을 맞고 내장이 흘러나오는 참혹한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공격으로 고난 당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16:15).
큰 슬픔을 상징하는 굵은 베를 상처난 곳에 같이 꿰매 내장이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영광을 상징하는 뿔을 땅에 박아 흙으로 더럽혀진 모습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외면 모두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무너져 있음을 한탄한다. 이런 고난 가운데 욥이 괴로운 것은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렇게 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만큼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욥 16:17).
어느 곳에서도 평안을 찾지 못한 욥은 하나님 앞에 한 가지를 기도한다. 그것은 죽음을 구하는 기도였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마음이 드니 그가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소망은 그 고통이 끝나는 죽음뿐이었던 것이다.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욥 17:13-16).
맺음말
욥은 끊임없이 친구들을 향해 서운한 감정을 쏟아내고 자신의 고난을 해결해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사람에게 서운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에는 평안이 없다. 그로 인해 그는 결국, 죽음을 구하는 상태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님께서 고난 중에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평안을 누리고 승리하였던 것처럼 우리는 고난 당할 때 주님을 신뢰하여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듯이 우리도 주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그리고 환경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고난을 담대히 이겨나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