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교만한 위로자, 독선의 고난자
교만한 위로자, 독선의 고난자(20260712)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욥 8:1-7)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를 읽을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대화들은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4장-27장에 이르는 이 대화는 앞과 뒤에 있는 말들을 연결하면서 읽어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욥기 8장도 결국 6-7장에 나타난 엘리바스의 말에 대한 욥의 대답, 그 욥의 말에 대한 빌닷의 대답이다. 빌닷의 말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욥기 8장 구조
1. 욥의 고난에 대한 빌닷의 인과응보적 해석(1-7절)
2. 조상의 전통으로 고난을 해석(8-10절)
3. 자연의 원리로 고난을 해석(11-19절)
4. 하나님의 공의로 고난을 해석(20-22절)
욥의 고난에 대한 빌닷이 인과응보적 해석(1-7절)
빌닷은 자신의 말의 시작을 이렇게 연다.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욥 8:1-2).
그는 욥의 긴 항변을 ‘거센 바람’이라고 질책한다. ‘거센 바람’은 강한 파괴력을 지녔으나 아무런 실체가 없는 존재를 말한다. 무언가 소리는 요란한데 그 가운데 알맹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욥의 말에는 들을 것이 없다는 소리다. 이렇게 욥의 말 자체를 무시한 빌닷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을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욥 8:3).
빌닷의 주장은 단순하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정의롭다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욥의 말처럼 의로운 자에게 고난을 주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빌닷은 인과응보적 관점에서 욥의 고난을 해석한다.
지금 욥이 고난당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과 그 고난의 원인에 대한 논쟁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욥은 자신에게는 죄가 없으니 고난의 원인은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한다. 빌닷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니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지키기 위해 빌닷의 욥의 가장 아픈 곳을 공격한다. 바로 욥의 자녀들의 죽음이다.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욥 8:4).
욥의 자녀들의 죽음 역시 그들의 죄의 결과라는 것이다. 빌닷이 이렇게 잔인하게 욥을 공격하는 이유는 욥으로 하여금 숨겨진 죄를 회개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엘리바스와 같이 빌닷도 욥을 빠져나올 수 없는 구석으로 몰아놓고 한 가지를 제안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5-7).
7절을 원문에서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렇다. “너의 처음은 적은 숫자지만 너의 나중은 수가 많아질 것이다.” 여기서 빌닷이 말하는 ‘수’는 자녀의 숫자를 말한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더 많은 자녀를 주실 것이라며, 죽은 자녀들의 수와 하나님이 다시 주실 자녀들의 수를 대조하며 설명한다. 빌닷의 이 말을 들은 욥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회개보다 분노를 유발하는 어리석은 위로이다.
1) 조상의 전통으로 고난을 해석(8-10절)
자신의 신념을 위해 욥의 가장 아픈 곳을 공격한 빌닷은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세 가지 증거를 제시한다. 먼저, 조상들의 전통이다.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우리는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아니하겠느냐”(욥 8:8-10).
인간의 경험이 축적된 조상들의 전통 속에서 고난은 죄인들이 당하는 마땅한 형벌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욥의 고난의 원인은 분명 그의 죄 때문이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였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단순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2) 자연의 원리로 고난을 해석(11-19절)
다음으로, 자연 속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빌닷은 자연 속에서 세 가지 현상을 들어 욥의 고난은 그 죄악의 결과임을 증거한다.
첫째 왕골과 갈대의 비유다. “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 데서 크게 자라겠느냐 이런 것은 새 순이 돋아 아직 뜯을 때가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찍이 마르느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욥 8:11-13).
왕골과 갈대는 물이 있는 곳에서 빠르게 성장하지만 물이 마르면 다른 그 어떤 식물보다 빠르게 시들어 버린다. 빌닷은 욥의 빠른 성공의 비결이 그의 죄악에 있다고 보고 그가 하나님을 잊고 저속한 죄인의 삶을 살았기에 결국 이러한 고난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단정한다.
둘째 거미줄이다. “그가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가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붙잡아 주어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욥 8:14-15).
빌닷은 하나님의 반석 위에 욥이 집을 지은 것은 아니라 세상에 걸쳐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바람이 불자 한 번에 그의 집이 찢어지고 무너졌다고 말한다.
셋째 나무다. “그는 햇빛을 받고 물이 올라 그 가지가 동산에 뻗으며 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갔을지라도 그 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 그 길의 기쁨은 이와 같고 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욥 8:16-19).
하나님이 나무를 뽑으니 나무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빌닷은 욥의 인생이 그렇다고 말한다. 한때는 화려했지만 하나님의 심판으로 뽑힌 그의 인생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의 원리를 욥의 고난에 비유한 이 세 가지 원리는 욥이 고난 전에 누렸던 성공과 현재의 멸망을 극명하게 비교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성공한 욥의 비결은 죄악에 있었고, 빠르게 성공한 만큼 빠르게 멸망한 것은 당연한 자연의 원리라고 말한다.
3) 하나님의 공의로 고난을 해석(8장 20-22절)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공의다. 발닷은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며 욥을 공격한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 웃음을 네 입에, 즐거운 소리를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욥 8:20-22).
인과응보 신학의 결과는 권선징악이다. 선한 자에게 복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하면 욥이 고난당한 것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빌닷은 욥을 향해 마지막으로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고 경고한다. 이미 욥의 장막은 사라졌다. 그는 육신의 장막마저도 병들어 고통 속에 지낸다. 빌닷은 너의 장막이 사라진 원인은 너의 죄 때문이기에 회개하지 않으면 그 장막은 결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빌닷은 욥과 그 가족들의 불의와 죄악을 강조한다. 욥이 고난당한 것은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빌닷이 알지 못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은혜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심판하시는 역설적인 방법은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용서하시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빌닷의 신학을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면 우리는 욥보다 더 큰 고난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것은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하나님이신가?
욥의 고난은 욥 자신과 세 친구 모두에게 일종의 신학적인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욥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렇게 큰 심판을 받을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자신을 마치 죄인 다루듯 심판하고 계셨다.
세 친구 입장에서는 욥이 이렇게 큰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그는 분명 큰 죄악을 저지른 죄인임이 분명한데 왜 하나님은 그에게 그처럼 큰 복을 주셨었는가? 그리고 욥은 왜 이렇게 회개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것인가?
욥과 세 친구가 아는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하나님이었다. 이 관점에서 욥의 고난을 바라보면 욥과 친구들의 이해는 너무도 달랐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경험과 이해 안에서 하나님을 제한하였기에 욥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고 친구들을 욥을 질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경험과 생각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고난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시고, 풍요를 통해서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학을 절대화하여 내가 아는 하나님이 전부이고, 내가 아는 것을 벗어난 것은 틀렸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맺음말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 “Why me?”라고 말한다. 내가 당하는 고난이 마치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기에 생기는 불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why not me?”라고 물어야 마땅하다. 오늘 하루 고난 없는 삶을 살았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기에 누리는 은혜다.
이렇게 고난을 바라보면 큰 지혜를 얻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고난을 우리도 겪고 있다고 생각되면 믿음으로 이겨나가야 하고, 고난이 없는 평안한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고 있음을 생각하고 감사하면 된다. 고난의 때이든 평안할 때이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