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고난을 부르는 입의 말
고난을 부르는 입의 말(20260621)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욥 2:10-3:3)
지난 시간에 우리는 욥기의 전체 주제는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면 두 배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하나님을 고난을 통해 가까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이제 욥기의 전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1-2장에서 욥은 두 번의 큰 고난 속에서 믿음의 고백을 한다. 그런데 3장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생명과 삶을 부인하며 하나님을 원망한다. 욥을 위로하러 왔던 세 친구도 욥의 원망을 듣고 더이상 위로자가 아닌 공격자가 되어 욥을 비난하면서 욥과 친구들 사이에 긴 논쟁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욥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이다가 자신의 삶을 원망하게 되었을까? 고난 중 믿음의 고백에서 원망과 불평으로 변하는 욥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에 이를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그럼으로써 고난 중에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가길 소망한다.
욥기의 주요 인물
먼저 욥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욥기의 등장인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욥기의 핵심 주제에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을 이해하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의 특징도 알 수 있고, 고난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도 얻을 수 있다.
1) 욥
우리는 욥이라는 사람이 성경 안에서 갖는 굉장히 독특한 위치와 역할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족장 시대, 아브라함과 야곱 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근거는 그의 재산을 가축의 수로 평가한 점, 그리고 그가 제사장의 역할을 하였던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은 그를 우스 땅에 거하는 동방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분명 이방인이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닌 욥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까? 더군다나 성경 속 어느 인물도 얻지 못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는 극찬까지 받을 수 있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욥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얻은 경건한 자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단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이른다는 것을 구약 성경이 이미 알려주고 있음을 알려준다.
2) 사탄
다음으로 사탄이다. 욥기 1-2장은 사탄이 하나님과의 합의를 통해 욥에게 고난을 주고 있는 것처럼 그린다. 마치 하나님이 욥을 사이에 두고 사탄과 거래를 하는 듯하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탄과 거래를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욥기에 사용된 ‘사탄’이라는 단어를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마귀의 대장인 사탄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사탄’이라는 단어는 동사로 ‘대항하다’, ‘고소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욥기에 사용된 사탄이라는 단어에는 정과사 ‘하’가 붙어서 ‘하사탄’인데, 정관사는 어떤 직책을 의미한다. 그러니 욥기의 사탄은 마귀의 대장 사탄이 아니라 ‘고소하는 자’, ‘대항하는 자’로 하나님께 세상의 일들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를 하거나 고소하는 역할을 했던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맞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이 복과 보상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곧 ‘까닭 없는 경건의 없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욥의 세 친구들의 주장과도 연결된다. 욥의 고난에는 까닭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욥의 아내도 사탄의 생각과 동일하였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이 욥의 모든 소유를 제하면 욥이 하나님이 저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욥 1:11).
이러한 사탄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사람이 바로 욥의 아내이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결국 욥기에는 두 개의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과 욥의 편으로, 인간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까닭이 있어야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시면 그것이 곧 모든 행동의 의미가 된다. 다른 하나는 사탄, 세 친구, 욥의 아내 편으로, 모든 일을 까닭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원인이 무너지면 원인의 창조자인 하나님도 무의미해진다는 전형적인 인간 중심 세계관이다.
두 종류의 고난
우리는 이 두 세계관의 충돌 속에서 두 종류의 고난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원인이 분명한 고난으로, 원인을 피하면 고난도 빗겨갈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으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의미를 찾아야 하는 고난이다. 욥의 고난이 여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원인을 찾아야 할 고난과 의미를 찾아야 할 고난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욥의 고난을 보면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욥의 고난에는 천재와 인재가 섞여서 나타난다.
스바 사람(15절): 소와 나귀 / 종들을 죽임
하나님의 불(16절): 양들과 종들
갈대아 사람(17절): 낙타와 종들
큰 바람(19절): 10명의 자녀들
원인이 분명하지 않고 하늘과 땅에서 고난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우리는 이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은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찾아야 한다.
욥의 믿음이 원망으로 변한 이유
그렇다면 욥은 왜 처음에는 고난을 잘 감당하다가 후에는 원망과 불신의 태도로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되었는가? 성경은 그 이유가 그의 입에 있다고 말한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 2:10).
두 번의 고난 가운데 욥은 입술을 굳건히 지켜 범죄하지 않았다. 욥뿐만 아니라 그의 세 친구들도 입을 지켜 침묵할 때는 욥의 위로자가 되었다.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욥 2:11-13).
그래서 고난 중 침묵은 포기나 좌절이 아니라 가장 큰 믿음과 신앙의 표현이다. 그런데 3장에 들어 큰 반전이 일어난다.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욥 3:1-2).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욥은 갑자기 침묵을 깨고 자신의 생명을 부인하는 원망과 불평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동안 침묵하며 욥을 위로하던 친구들도 욥을 향해 비난과 저주의 말을 쏟아내면서 그들은 더이상 위로자가 아니라 파괴자가 되었다. 결국 욥이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는 고난 중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기도하고 찬송 부르면서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려 몸부림친다. 그러다 고난이 어느 정도 지나간 후, 서운함과 허무함이 밀려오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번 터진 원망의 말은 끝내 자신의 삶과 신앙까지도 포기하는 절망의 소리로 변하게 된다.
결국 욥기 후반부에서 하나님께서 욥을 책망하신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 없는 입이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 38:1-2).
욥을 향한 하나님의 분석은 명확하다. 그의 마음의 생각이 어두워진 것은 그의 원망과 불평의 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욥도 다른 것이 아니라 그의 어리석은 입술의 말을 회개하였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6).
우리가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는 길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입술로 원망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0-21).
맺음말
우리는 욥의 고난을 보며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게 된다. 어린 양과 같이 침묵하시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어떠한 변명이나 원망 없이 침묵으로 고난을 가장 의미 있게 이겨내셨다. 예수님처럼 고난 중에서 의미를 찾고 침묵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참된 지혜자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