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사랑과 용서로 회복된 가정
사랑과 용서로 회복된 가정(창 33:1-4, 45:14-15)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 33:1-4)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창 45:14-15)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
가정은 ‘사랑’을 통해서 행복이 유지된다. 부부는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고,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한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자매는 서로 우애하며 살아갈 때 가정은 행복의 처소가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가정은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곳이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은 가정에서의 사랑을 무너뜨렸다. 그로 인하여 부부는 서로 경쟁하려 하고, 부모는 자녀를 통제하려 하고, 자녀는 부모를 무시하고, 형제와 자매는 시기하고 다투는 관계가 되었다.
이렇게 무너진 가정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 무너진 사랑을 다시 한번 회복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의 능력으로 회복된 성도가 먼저 가정 안에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요한 사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전한다.“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9-11).
회복된 두 가정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회복하신 두 가정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회복된 r, 가정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어 천국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1) 야곱과 에서의 관계 회복
잘 아는 바와 같이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은 장자권을 놓고 다투었다. 결국 야곱이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여 이삭의 모든 축복을 훔쳐 받음으로 에서와 야곱은 이제 더이상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의 파탄을 맞이하였다.
분노 가운데 동생을 죽이려는 에서를 피해 야곱은 외삼촌의 집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런데 잠시 피하려 떠났던 그곳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20년이 지나도 형의 분노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야곱은 형 에서가 장정 400명을 이끌고 나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큰 두려움을 느낀 야곱은 얍복 강가 브니엘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며 밤을 보낸 야곱은 다음날 형 에서를 만나게 된다. 본문은 두 사람의 만남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 33:3-4)
형 에서는 다리를 절며 나아오는 동생 야곱을 안으며 서로 화해하게 된다. 20년을 원수가 되어 떨어져 있던 쌍둥이 형제가 그간의 미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화해하고 용서하게 된 것이다.
2) 요셉과 형제들의 관계 회복
다른 이야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의 용서와 화합의 이야기이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서로 다른 네 명의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놓고 끝없는 다툼을 이어갔다.
이러한 경쟁 관계 속에서 특별히 경계 대상이 된 사람은 아버지 야곱이 가장 아끼던 여인, 라헬의 아들 요셉이었다. 야곱은 다른 아들들보다 라헬의 소생인 요셉을 특별히 더 사랑하였다. 그러나 결국 이 사랑이 요셉을 형제들로부터 미움받고 버려지게 하였다.
형들에 의해 팔려간 요셉은 22년 만에 형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번에는 관계가 역전되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형들은 생존을 위해 총리가 된 요셉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형들의 변화를 깨달은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형들과 화해하게 된다. 성경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창 45:1)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창 45:14-15)
이 두 장면은 참으로 감동스럽다. 원수가 되어 서로 죽이고자 하고 팔아버렸던 형제들이 이제 서로 안고 울면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원수가 되었는가? 또 하나님은 이들을 어떻게 회복시켜 주셨는가? 우리는 이제 이 두 가지를 살펴보려 한다.
가정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사랑
먼저 이 두 가정은 왜 형제가 형제를 죽이려 하고 팔아버리는 관계가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1) 부모의 잘못된 사랑
이 두 경우 모두 깨어짐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모의 잘못된 사랑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그 사랑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을 위한 것일 때 그 사랑은 결국 가정을 파괴하게 된다.
에서와 야곱의 관계가 깨어진 것은 그들의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의 잘못된 사랑 때문이었다. 아버지 이삭은 장남 에서가 자신을 이어 족장이 되길 원했다. 반면 어미니 리브가는 야곱이 남편을 이어 족장이 되길 원했다. 성경은 이 부부가 왜 쌍둥이 형제를 놓고 서로의 사랑이 갈리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삭은 사냥꾼 에서가 잡아오는 동물을 기뻐하였고 리브가는 자신과 집에 머물며 함께한 야곱을 더 사랑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부모의 이러한 잘못된 사랑 때문에 20여 년을 집을 떠나 살았던 야곱 역시 자신의 자식들을 편애하였다. 야곱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라헬의 아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였다. 야곱의 편애는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세운 아내와 자녀들의 순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창 33:1-2).
무장하고 다가오는 에서를 맞는 순서는 두 여종인 빌하와 실바, 그리고 그녀의 자녀들이 가장 앞에서 섰다. 그 뒤에 레아와 그녀의 자녀들, 맨 마지막에 라헬과 요셉이 섰다. 이 순서에는 야곱의 잘못된 사랑이 그대로 담겨 있다.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창 32:6-8).
에서와 사백 명의 무장한 장정들을 맞으러 맨 앞에 서 있던 자녀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두려움도 컸겠지만 자신을 앞장 세운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맨 뒤에 있는 요셉을 대한 미움이 강하게 자리잡았을 것이다.
2) 과도한 경쟁이 가져온 분열
야곱과 에서, 요셉과 열 명의 형제들 사이의 미움과 다툼. 이 두 세대를 이어 계속되는 가정의 갈등에는 누가 아버지를 이어 족장이 될 것인가라는 형제들 사이의 경쟁이 있었다.
우리는 이 두 사건에 모두 연관된 사람이 야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야곱은 형 에서와의 관계에서 스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족장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가졌고, 그것을 얻기 위해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는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야곱은 다른 아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였기에 그에게 족장 자리를 물려주려 하였다. 결국 야곱이라는 사람의 족장에 대한 욕심은 2대에 걸친 가족의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야곱의 행동에 무서운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야곱은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이기 위해 사용했던 방식 그대로 자신의 아들들에게 속임당하게 된다.
먼저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사기 위해 자신이 만든 붉은 죽을 이용한다.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창 25:30-31).
또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기 위해 형 에서의 옷을 입고 염소를 잡는다.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창 27:9),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창 27:15).
붉은 죽으로 형 에서를 속였고, 에서의 옷과 염소로 만든 별미로 아버지 이삭을 속인 야곱은 그의 아들들에게 이 방식 그대로 속임을 당한다. 그의 아들이 야곱이 요셉에게 특별히 지어준 채색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잡아 붉은 피를 옷에 묻히고 요셉이 짐승에게 잡혀 죽었다고 말하며 아버지 야곱을 속였다.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창 37:31-32).
우리는 성경이 이 두 사건을 통해 경고의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한다. 가정이 깨어지는 것은 잘못된 사랑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되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기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녀를 나의 욕망과 마음의 기쁨을 채우고자 하는 수단으로 사랑하면 그 사랑이 결국 자녀의 삶과 가정의 행복을 무너뜨리게 된다.
또한 자녀들 사이의 과도한 경쟁 관계가 가정을 행복을 무너뜨린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연약함을 보살피고 돌봐주는 관계로 성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조금 뒤처지는 자녀를 보면서 다른 자식들과 비교하여 경쟁시키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서 사랑을 지워버리는 아주 잘못된 교육이다.
가정 회복의 세 가지 원리
그러면 무너졌던 이 두 가정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었을까? 팀 켈러는 그의 책에서 무너진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용서를 통해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용서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죄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죄의 해결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는 세 단계가 필요하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잘못된 사랑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둘째는 무너진 자신의 삶과의 화해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셋째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해자라면 용서를 구하고, 자신이 피해자라면 사랑으로 용서해야 한다.
사실 용서와 화합은 인간으로서는 너무도 힘든 일이다. 가족들 사이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셔야만 가족들 간의 용서와 화해가 가능하다.
먼저 야곱과 에서의 경우를 살펴보자.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전 하나님을 두 번 만난다. 한번은 마하나임에서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것과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씨름하며 축복을 구한 일이다. 하나님과의 이 두 번의 만남은 야곱으로 하여금 형 에서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을 들게 하였다.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창 32:30)
하나님은 브니엘에서 그렇게 당당하며 거세던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셔서 형에서 앞에서 긍휼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준비하셨다. 이렇게 에서와 야곱 사이의 용서와 화해는 야곱이 먼저 하나님을 마하나임과 브니엘에서 만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화해할 수 있는 용기와 환경을 준비하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요셉과 형제들의 용서와 화해는 더 극적이다. 요셉은 두 번이나 그의 형들을 시험하며 그들이 변했는지 그대로인지 살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베냐민을 위해 나서는 유다와 다른 형들의 모습을 보며 요셉의 마음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의 고난을 통해 만난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5-8).
피해자인 요셉은 하나님을 만났다. 자신의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다. 그리고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 사명자로 온 것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고통의 22년의 세월과도 화해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을 애굽의 노예로 판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요셉의 용서와 화해의 과정은 그가 애굽 땅에서 낳은 두 아들의 이름에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는 첫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한다. 그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버지의 온 집안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이다. 은혜가 억울함과 아픔, 고통을 덮었다. 하나님과 화해한 것이다. 그리고 둘째 아들의 이름은 ‘에브라임’으로 짓는데 이는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고통의)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의 의미다.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 나를 이곳에 세우셨음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였다. 그리고 변화된 형들을 보고 그들을 용서하고 끌어안았다.
맺음말
말라기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돌이켜지고, 자녀의 마음이 아버지에게로 돌이켜지는 회복이 일어날 것을 말한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열린교회 모든 가정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그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