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베드로의 고백과 배신
베드로의 고백과 배신(202602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마 16:15-20)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3-24)
극과 극의 인생
누군가로부터 극찬을 받고 난 후 곧이어 심한 질책과 책망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으로부터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는 놀라운 칭찬을 받고 난 후, 곧바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가장 심한 책망을 받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베드로이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고 사람이 생각이 그의 마음을 채우자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방해하는 사탄의 앞잡이가 되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있다. 은혜를 받으면 모든 것을 내어놓고 주를 위해 살 것처럼 하지만 또 모든 은혜를 잊어버리고 복음의 훼방꾼처럼 살아갈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베드로의 인생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것도, 신앙을 지키는 것도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함을 배우려고 한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사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다고 말한다(마 4:18-20, 막 1:16-19). 누가복음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후(눅 4:38-39),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과 함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으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을 기록한다(눅 5:1-11). 이 세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신 곳을 바닷가로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첫 만남이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고 있던 요단강 근처라고 말한다. 본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을 따랐고 후에 자신의 형인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한 것으로 기록한다. 그 첫 만남에서 예수님은 시몬의 이름을 게바, 곧 베드로라 칭하셨다(요 1:40-42).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한 사복음서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예수님의 사역과 삶을 기록하고 있기에 이처럼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 강조하는 점이 조금씩 다른 것이다.
이 사건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안드레가 먼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따랐고 후에 그의 형제 시몬을 예수님께 소개시켜 주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의 생업터인 갈릴리 바다에 찾아와 그들을 정식으로 제자로 부르셨다.
예수님이 시몬에게 게바(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은 안드레의 소개로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이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 1:42)
첫 만남에서는 그저 이름만을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 그의 이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며 그의 이름의 의미와 역할을 설명해 주셨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이처럼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다. 예수님은 시몬을 보시고 그에게 게바(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고 그들의 생업터에 찾아가 그를 친히 제자로 부르셨다.
이 만남 이후 베드로는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어떨 때는 충성되고 순종하는 제자의 모습을, 또 때로는 주님의 사역에 방해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베드로의 이러한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예수님을 따를 때는 세상 그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차갑게 주님을 멀리하고 떠난다. 우리는 그렇게 뜨거웠던 우리의 신앙을 무엇이 일순간에 차갑게 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럼으로써 이전의 시몬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사명을 주신 이름, 베드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의 비결을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
베드로의 놀라운 신앙 고백
베드로의 이름은 신약 성경에 162번 나올 정도로 그는 예수님의 사역의 현장에 항상 있었다. 그의 위치가 어떠했는지는 그의 이름의 순서에서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이 나열된 곳은 성경에 네 곳인데 이 모든 곳에서 베드로의 이름은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사람이 가룟 유다이다. 이는 사복음서 모두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를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가룟 유다를 가장 가치 없는 제자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고, 제자들을 이끈 리더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제자들 중 가장 큰 신앙의 변화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보인 가장 큰 신앙의 모습은 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최초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5-16).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여기는지 물으셨고 이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시며 그에게 사명을 주신다. 그것이 마태복음 16장 17절-18절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7-19)
베드로의 이 위대한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에게 교회를 세우는 사명과 천국의 문을 여는 사명을 주신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위에 모든 교회는 세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워지는 교회에서 선포되는 복음으로 천국의 문이 열릴 것이다.
이 사명의 첫 번째 성취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선포했을 때 예루살렘에 첫 교회가 시작되었고 삼천 명의 사람들에게 천국의 문이 열렸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8-41)
이렇듯 베드로를 통해 교회는 처음 세워졌고, 복음 사역의 첫 열매가 천국의 문을 열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졌다.
베드로의 충격적인 불신과 패역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에 항상 적극적이었고 앞서서 행동하는 신앙의 본을 보였다. 주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고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실 때 그 물에 뛰어들어 걷기도 하였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도 디베랴 바닷가에서 물에 뛰어들었다. 만약 이러한 베드로의 모습만 성경에 기록되었다면 우리는 베드로를 보면서 존경은 하나 공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베드로의 신앙적인 결단과 순종보다 더 많은 실패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실패들을 보면 그가 과연 예수님의 수제자였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베드로의 대표적인 실패는 마태복음 16장에 나타난다. 베드로의 놀라운 신앙 고백 이후 예수님은 처음으로 붙잡혀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그런데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베드로의 반응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 16:22-23)
바로 직전에 예수님으로부터 교회의 반석이요, 천국의 열쇠를 맡기겠다는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가 주님께로부터 이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질책을 받게 된다. 이 구절은 ‘사탄아, 내 앞에서 뒤로 물러나라. 너는 나의 길에서 넘어뜨리게 하는 덫이니라’라는 의미다. 덫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칸달론’은 짐승을 잡는 덫을 말한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복음의 훼방꾼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그가 예수를 붙잡고 항변하였다’라고 기록한다. 이는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잘못한 사람의 뒷덜미를 잡고 꾸짖는 모습을 말한다. 이러한 베드로를 보고 주님은 그를 사탄이라고 부르며 주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책망하신다.
어떻게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그 이유를 예수님은 23절에서 말씀하신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주님의 이 책망 속에 우리의 모든 실패의 원인이 담겨 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신앙에서 갑자기 사탄의 앞잡이가 되고 주님의 길을 막고 무너뜨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사람의 일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곧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이느냐가 중요하다.
베드로가 얼마나 대단한 고백을 했는지 보라.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일을 생각하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에게 손해가 되었고, 자신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되었다.
베드로가 이렇게 분노한 이유는 예수가 그의 신분의 천함, 가난함, 민족의 억울함을 풀어줄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의 화려한 성공을 기대하였으나 예수님의 사역이 붙잡힘과 죽임으로 끝날 것이라는 말씀을 듣자 분노가 일어나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거룩한 고백을 삼켜버린 것이다. 인간이 욕심이 이렇게 무섭다. 아무리 거룩한 신앙 고백도 인간의 욕심 앞에서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자 하는 종교적 신념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도 그렇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고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살아야 하는 성도의 삶보다 나의 성공과 건강, 명예와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된다면, 주님이 주시는 고난이나 헌신을 거부하고 주님의 능력을 통해 나의 뜻을 이루려 한다면 우리 모두 사탄의 앞잡이, 주님의 길을 무너뜨리는 패역한 죄인들이 될 수 있다.
맺음말
우리가 하루하루 신앙을 지키며 사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가능하다. 누구라도 은혜에서 멀어지면 사탄의 앞잡이이며, 주님의 길을 무너뜨리는 복음의 방해자들이 된다. 우리가 은혜에 거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삶 속에 사람의 생각이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계획을 기억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라. 그로써 베드로라는 사명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