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성도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성도(202601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눅 2:25-39)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의 기도가 간절하게 될 때는 삶이 절박한 상황에 놓일 때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러했다. 그들이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그때,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는 더욱 깊어졌고 하나님을 찾는 열망은 커져만 갔다. 그들은 그 고통의 때에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바랐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에 ‘내가 나의 종,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보내어 너희를 구원하리라’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래서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소망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가 와서 그들을 이방 민족의 압제에서 구원하리라는 ‘메시아 대망 사상’,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었다.
구약 성경 곳곳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300곳 이상 나온다. 톡별히 선지서에 많이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서다. 이들 선지서에서 메사아는 다윗의 후손이며 온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올 왕으로 그려진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렘 23:5)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 34:23)
하나님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주셨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메시아가 속히 와서 우리를 구원해 주기를 기도하였다. 포로기에 시작된 메시아 대망 사상이 절정에 이를 때는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였다.
두 가지 기대감
그런데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에게는 두 부류의 기대감이 있었다. 한 부류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 곧, 잘못된 기대감으로 메시아를 기다린 사람이었다. 이들은 메시아가 와서 강력한 군사, 정치적 힘으로 그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길 기대했다. 그리고 유대를 독립시켜 하나의 온전한 국가로, 다윗 시대와 같은 영화를 회복시키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조금만 세력 있는 자가 등장하면 ‘당신이 오실 이이니까?’라고 물으며 그 사람을 메시아로 추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류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보내실 온전한 메시아를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는 메시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킬 진정한 메시아를 기다렸다.
우리는 예수님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이다. 히브리어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가 된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이 아기 예수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우리에게도 두 가지 기대감이 있다. 하나는 예수가 내가 원하는 때에, 나의 삶의 긴박한 문제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해 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를 기다린 것과 같다.
또 다른 하나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묵묵히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아를 기다린 것처럼, 나의 필요를 내려놓고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때에, 나의 인생 가운데 이루실 것을 바라며 예수를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살펴볼 시므온과 안나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메시아가 아닌, 하나님이 보내시는 진정한 메시아를 일평생 기다렸다.
시므온과 안나
시므온과 안나는 누가복음에만 등장한다. 다른 인물들에 비해 한 번만 나오기에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은 ‘예수’라는 단어와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 이 두 사람은 한 팀으로 등장하고,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우리는 이들의 이름에서도 이 두 사람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시므온이라는 이름은 구약의 사무엘이라는 이름과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 곧 그의 이름에는 ‘듣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안나가 된다. 그리고 한나의 이름의 의미는 ‘은혜’다.
시므온과 안나의 이름의 의미가 구약의 사무엘과 한나와 같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성경에서 감당한 역할도 동일하다. 사무엘은 구약에서 가장 어두운 400년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로, 다윗이라는 왕을 세움으로 죄악의 시대를 닫고 은혜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한나는 은혜의 시대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였다.
이와 동일하게 시므온은 400년 중간기를 마치고 이 세상을 평화로 다스릴 진짜 왕, 메시아를 가장 먼저 보고 고백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고백 안에서 400년 중간기의 어두움이 물러가고 세상에 빛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눅 2:31-32).
여선지자 안나는 아기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속량이 시작되었다고 선포한다. 이는 중간기에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은혜의 하나님으로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8). 그래서 한나처럼 안나도 은혜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무엘과 한나가 다윗을 통해 하나님이 나라를 선포한 것처럼, 시므온과 안나는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 예수가 그리스도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 신약의 사무엘과 한나였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아기 예수가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심을 통해 이루실 일에 대한 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의 기다림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가 어떤 기대감으로 예수님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본문 배경은 아기 예수의 정결예식의 날이 되어 부모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간 일을 기록한다. 이 정결예식은 두 가지였을 것이다. 먼저 아기 예수에 관한 것이라면 남자아이는 태어난 지 8일이 되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 또한 정결예식은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도 적용된다. 이러한 정결예식은 처음 태어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드렸다(눅 2:23). 이렇게 예수의 부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갔을 때 만난 사람이 시므온과 안나다. 성경은 시므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 2:25)
시므온의 성품은 의롭고 경건하며 그의 사명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은 성령으로부터 주어졌다. 시므온의 구체적인 사명은 26절에 나온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눅 2:26).
시므온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나이는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그의 생명의 날은 그리스도를 오심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과도 같이 높아만 갔다.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은 그리스도가 오심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때를 증명하는 시계와 같았다. 시므온은 그의 생명을 두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증거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안나는 시므온과 다르게 소개한다. 안나는 선지자로 소개되는데 결혼 후 7년과 남편과 살고 평생 과부로 지낸 고령의 여인이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 2:36-37).
시므온은 삶의 마지막 마침표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기다린 사람이었다. 그가 그리스도를 보는 때는 그의 인생 마지막 시간이었다. 반대로 안나는 7년의 결혼 생활 후 남편 없이 일평생을 그리스도를 기다린 사람이었다. 그녀는 마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는 신부와 같이 일평생 새로운 시작을 위해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그녀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이었다. 시므온이 그의 인생의 경주 도착점으로 그리스도를 기다렸다면 안나는 그녀의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으로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은 시므온처럼 이 땅에서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마치는 일이다. 우리는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만나고 그의 사명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눅 2:28-32)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명에 묶여 있던 시므온은 하나님께서 이제 자신을 놓아주시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아기 예수를 통해 보았다고 고백한다. 이 아이가 오기 전에는 이방은 어둠 가운데 있었고 이스라엘은 수치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 아이가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시므온의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므온의 이름은 ‘듣다’의 의미를 갖는다. 그의 사명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되었으나 그의 마지막은 아기 예수를 만나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여선지자 안나는 아기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구원을 시작하셨음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했다. 안나에게 아기 예수는 마침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은혜의 시대를 열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을 선포하는 일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8)
시므온과 안나는 오랜 시간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들에게 주신 사명은 달랐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악의 시대를 닫았다, 이제 은혜의 시대가 온 것을 보았다며 그의 인생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안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속죄와 용서하심, 구원이 시작되었다고 선포하였다. 아기 예수를 만난 이 두 사람의 기다림은 이 세상의 마지막이며 또한 새로운 세상의 시작임을 보여줌으로써 예수님이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신 온전한 목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맺음말
우리도 우리 삶 가운데 예수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런데 그 기다림을 이끌어내는 기대감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대부분의 유대인처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올바른 기대감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만나면 이 암흑의 시대, 수치의 시대가 그치고 빛과 영광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 기대감은 우리의 결단을 이끌어낸다. 그것은 내가 이제 죄악을 벗어버리라, 세상에 빼앗겼던 마음을 버리고 이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리라는 결단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 가운데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시므온과 안나의 이 고백이 예수를 만난 자에게 함께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