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우리를 생명으로 초청하는 지혜
우리를 생명으로 초청하는 지혜(20251221)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잠 9:1-18)
우리는 5개월에 걸쳐 잠언을 배우고 있는데 잠언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혜는 사람의 경험이나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지혜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만드셨고, 그 지혜를 통해 세상을 지으셨다. 그리고 창조 후에 지혜는 이 세상을 아름답고 질서 있게 운행하는 원리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지혜 교육의 원리는 분명하다. 하나는 실질적이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구체적인 삶을 아들에게 말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다른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도록 가르친다는 것이다.
잠언 1-9장의 큰 구조
아버지가 1-9장에서 지혜 교육을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의인화였다. 추상적인 개념을 한 인물로 드러내는 것이다. 1-9장의 구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악한 친구(1:8-19)
지혜 친구(1:20-33)
지혜 여인(9:1-6)
미련한 여인(9:13-18)
아버지는 1장을 시작하면서 두 친구를 소개하였다. 악한 친구는 매력적이다. 쉽게 돈을 벌어 편하게 살자고 유혹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악한 친구에 대한 대안으로 지혜 친구를 제시한다.
아버지는 2장과 3장을 지나면서 아들이 성장 단계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제시한다. 지혜로운 자의 길에는 하나님의 복과 생명이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에는 멸망과 죽음, 후회가 있다.
그리고 9장에 이르러서는 아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선택을 말하는데 바로 배우자 선택이다. 9장에는 두 여인이 등장한다.
잠언 9장의 구조
9장의 전체 구조는 두 여인의 초청 사이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를 놓고 있다. 이는 두 초청장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에 대한 원리가 여호와 경외의 지혜임을 보여준다.
A. 지혜 여인의 초청(1-6절)
B.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7-12절)
A’. 미련한 여인의 초청(13-18절)
잠언 9장에서의 두 여인의 초청은 7장에서 한 젊은이가 간교한 여인의 문 앞에서 있는 모습, 그리고 8장에서 지혜 여인이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아버지는 7장에서도 문 앞에 서 있는 젊은이, 8장에서도 지혜의 문 앞에 있는 사람을 설정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우리는 세상 유혹의 문 앞에 있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초청 앞에 있기도 하다. 우리는 날마다 이 두 문 사이에 있다. 그리고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지혜 여인의 초청
먼저 9장의 첫 초청장은 지혜 여인에게서 온 것이다. 1절은 특별히 그녀의 집에 관해 묘사한다.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잠 9:1)
지혜 여인의 집은 일곱 기둥으로 세운 집이다. 여기에 사용된 ‘집’이라는 단어는 실제 건물로서의 집과 가족이 함께하는 가정 모두를 의미한다. 그리고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벽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녀가 세운 집이 튼튼하고 안전하며 온전한 가정임을 암시한다.
계속해서 2절은 지혜 여인이 자신이 지은 집에서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을 그린다.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잠 9:2).
지혜 여인의 잔치에 대한 묘사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짐승을 잡는다는 것은 잔치의 규모를 나타낸다. 매우 성대한 잔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포도주를 혼합한다는 것은 포도주에 꿀이나 향료를 첨가하던 관습을 말한다. 포도주는 기쁜 날을 상징한다. 특별히 혼인잔치에 꼭 필요한 음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상을 갖추고’는 시편 23편의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와 동일한 표현으로 큰 잔치에 걸맞은 거대한 잔치상을 의미한다.
3-6절에서 지혜 여인은 이제 손님을 초청한다.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잠 9:3-6).
지혜 여인은 존귀한 여주인의 모습으로 집에서 기다리고 여종을 보내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초청한다. 그리고 초청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와 지혜 없는 자들이다.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서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다.
고대에 여인이 남자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는 것은 결혼이나 친밀한 관계로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지혜 여인은 아직 인생의 길을 결정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집으로 와서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먹고 교제함으로 지혜의 집을 같이 세워가자고 부른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자’들이 지혜 여인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면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 생명, 명철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미련한 여인의 초청
13-18절에서 미련한 여인도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한다. 그런데 미련한 여인은 아무런 준비 없이 사람들을 부른다.
“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잠 9:13).
미련한 여인은 잔치와 상관없는 일로 분주하다. 그녀는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초청한다.
‘떠들며’라는 표현은 7장 11절에서 간교한 여인이 자신이 파괴할 젊은이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묘사한 것과 동일한 단어다.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잠 7:11).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라는 구절은 미련한 여인은 영적, 지적으로 지혜가 없어서 지혜 여인과 달리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유익도 줄 수 없는 헛된 여인임을 말한다.
14-15절은 미련한 여인이 사람들을 초청하는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잠 9:14-15).
지혜 여인은 여종을 보내 성의 높은 곳에서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초청한 반면, 미련한 여인은 자신이 문 앞에 앉거나 성읍 높은 곳에서 있는 자리에 앉아서 행인을 초청하고 있다. 자기 문 앞, 혹은 성읍 높은 곳으로 묘사된 장소는 고대 창녀들이 길가는 행인을 유혹하는 장소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련한 여인이 초청하는 대상이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이라는 것이다. 지혜 여인은 어리석고 지혜 없는 자를 초청하여 올바른 길을 제시하려 하지만 미련한 여인은 자신의 길을 올바르게 걷는 자들을 초청하여 그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한다.
지혜 여인은 그녀에게 오는 자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먹고 생명을 얻으며 명철의 길로 행하라고 권하는 반면, 미련한 여인은 아무런 음식도 준비하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가 하나의 유혹을 던진다.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잠 9:17).
17절의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있다는 문구는 창녀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여기서 물은 성관계를 의미한다. 미련한 여인은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들을 왜곡되고 타락한 성적 쾌락으로 유혹하여 결국은 이들을 스올과 죽음으로 인도한다. 그래서 미련한 여인의 유혹에 넘어간 자들의 운명을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잠 9:18).
지혜 여인과 미련한 여인의 초청 비교
두 여인의 초청은 매우 대조적이다. 이것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 지혜 여인의 초청(1-6)
*행동: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초청자: 어리석은 자/지혜 있는 자
*제공하는 음식: 내 식물, 나의 혼합한 포도주
*결과: 생명
2) 미련한 여인의 초청(13-18)
*행동: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초청자: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
*제공하는 음식: 도둑질한 물, 몰래 먹는 떡
*결과 : 죽음과 스올
우리도 날마다 이러한 유혹과 초청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잘 준비된 길로, 하나님의 집으로 우리를 초청한다. 그런데 우리의 육신의 안목은 그 길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세상의 속삭임에 솔깃하게 다가선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길에는 고통과 후회,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
아들이 어떤 초청장을 받아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9장 7-12절에 나온다. 사실 이 단락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치는 잠언 1-9장을 요약한 것이다.
먼저 아버지는 지혜를 받는 자에게는 두 가지 반응이 있다고 말한다. 거만한 자와 지혜 있는 자이다. 거만한 자는 소망이 없기에 그를 가르치는 자는 오히려 능욕을 당할 것이니 책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배움의 소망이 있기에 그 가르침은 그를 변화시킬 것이다.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잠 9:7-9).
우리도 지혜의 가르침 앞에서 두 모습 중 하나로 설 것이다. 말씀 앞에 가장 소망 없는 자들이 거만한 자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책망하더라도 더욱 그 말씀을 사랑한다. 누구나 지혜가 부족하다. 만약 우리가 거만한 자로 선다면 세상에서 가장 소망 없는 자가 될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씀의 책망을 사랑하라면서 두 여인의 초청장 가운데 누구의 것을 받아들지에 대한 지혜를 전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아버지는 이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하였다(잠 1:7). 그리고 아버지 담화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한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하면서 1-9장 사이에 있는 아버지 잠언이 모두 여호와 경외에서 나온 것임을 밝힌다. 선택에 있어서 가장 기본은 창조주 하나님을 그의 삶 가운데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다.
두 여인의 초청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미련한 여인의 유혹이 훨씬 매력적이다. 그러나 명철의 눈으로 보면 지혜 여인의 초청이 얼마나 잘 준비되었는지, 그리고 그곳에 얼마나 큰 하나님의 복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명철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지혜 여인의 초청과 같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은 잘 준비된 길이고 그곳에는 생명이 있다. 그러나 미련한 여인의 초청은 한순간의 쾌락, 잠시의 성공으로 인도하나 그 길 끝에는 절망과 죽음만이 있다. 이 두 길 사이에서 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이다.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맺음말
지혜 여인의 초청은 하나님의 지혜로 오신 예수님의 초청으로 이어진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인생의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얻어 예수님이 초청하는 길로 나아가는 주님의 귀한 지혜자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