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스올의 길과 어둠의 시간을 피하라
스올의 길과 어둠의 시간을 피하라(20251123)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 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잠 7:6-23)
음녀의 유혹에서 피하라
잠언 1-9장에 나오는 아버지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지혜로운 여인과 음녀 사이의 선택의 지혜이다. 어떤 배우자를 선택하느냐는 것이 그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아버지는 지혜로운 여인과 대척점에 있는 음녀의 치명적인 유혹과 그 유혹에 빠진 자의 말로를 네 번에 걸쳐 매우 상세하게 전한다.
음녀의 유혹이 처음 언급된 곳은 잠언 2장이다(잠 2:16-19). 2장에서 아버지는 지혜가 주는 유익을 말하면서 지혜가 음녀의 유혹에서 지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5장에서는 이 음녀의 유혹에 대해 보다 더 자세히 설명하고 그 유혹에서 벗어나는 길로 아내와의 참된 사랑을 제시한다. 그리고 6장에서는 두 종류의 성적 범죄, 곧 음녀와의 간음과 타인의 아내와 통간한 죄에 빠진 자는 모두 재물과 생명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것을 경고한다. 이제 7장에서 아버지는 음녀의 유혹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의 결론을 제시한다. 음행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결과를 어리석은 젊은이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것이다.
이 네 번에 걸친 음녀의 유혹에 대한 가르침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음녀는 사람의 생명을 사냥하는데, 그를 육체적인 타락으로 이끌 뿐 아니라 그의 영혼을 사망으로 인도하는 심각한 죄라는 것이다. 음녀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단순히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육체와 영혼에 치명적인 해를 가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잠 2:18-19)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잠 5:5)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잠 6:26)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 7:25-27)
스올은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사망의 방은 생명 있는 자들을 죽게 만드는 곳이다. 음녀의 방이, 음녀의 집이 죽은 자들이 거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네 번의 음녀의 유혹에 대해 결론은 동일하다.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본문 구조 및 배경
아버지는 지금까지 자신이 전한 음녀의 유혹에 대한 가르침을 종합하며 이것을 보다 사실적으로 전하기 위해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7장에서 시작한다. 7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A. 아버지의 권고(1-5절): 지혜를 얻으라
B. 한 젊은이의 이야기(6-23): 음녀의 유혹과 그 결과
A’. 아버지의 권고(24-27): 음녀의 길의 결과
1-5절은 서론으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혜를 찾고 구하라고 명령한다. 아들이 지혜를 찾아야 하는 이유는 지혜가 아들을 음녀의 유혹에서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본론에서는 2장, 5장, 6장에 나타나는 음녀와 남의 아내, 이방 여인이 한 여인으로 등장시키면서 음녀가 젊은 청년을 유혹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6-23). 결론에서 아버지는 음녀의 유혹에 빠진 자의 운명을 스올의 길, 사망의 방으로 설명하며 음녀의 유혹에 빠진 사람이 경험할 몸과 영혼의 파괴를 강조한다(24-27).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의 권고(1-5절): 지혜를 얻으라
7장을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대로, ‘내 아들아’라고 부른다. 그런데 전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표현을 4절에서 사용한다. ‘누이’와 ‘친족’이 그것이다.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잠 7:4).
‘누이’라는 말은 동기간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아내’를 가리킨다(아 4:9). 그리고 ‘친족’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모다’는 혈족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매우 가까운 사람을 가리킨다. 결국 아버지는 지혜를 아내처럼, 명철을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명철은 통찰력을 말한다. 우리가 음녀의 유혹에 속는 이유는 그것이 매력적인데 그것 뒤에 감추어진 독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바라보며 선택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를 선택할 수 있다.
아버지는 5장에서 음녀의 유혹을 이길 방법으로 아내와의 흡족한 사랑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7장에서는 다시 한번 지혜를 아내처럼, 명철을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여기라고 한다. 5절은 이 가르침을 요약하며 음녀의 치명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 지혜를 얻는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잠 7:5).
우리 힘으로는 유혹을 이길 수 없다. 죄는 항상 우리보다 강하다. 그래서 죄를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이 있어야만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죄를 이길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지혜와 명철로부터 온다.
한 젊은이의 이야기(6-23): 음녀의 유혹과 그 결과
아버지는 본론(6-23)에서 한 젊은이가 음녀의 유혹을 받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이 이야기 첫 단락(6-13)과 마지막 단락(21-23)은 아버지가 관찰한 음녀의 유혹이고, 14-20절은 음녀의 유혹을 음녀 자신의 목소리로 보다 셍생하게 전한다.
1) 아버지의 관찰
아버지는 집 창에서 바라본 길거리의 풍경을 전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잠 7:7).
아버지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은 ‘어리석은 자’, ‘젊은이’, ‘지혜 없는 자’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특징은 그가 처할 운명을 암시한다. 앞부분에서 잠언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를 주고, 젊은 자에게 지혜를 주고, 지혜 없는 자를 지혜롭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잠 1:4-5). 본문에 나오는 젊은이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의해 세워지지 않은, 어찌보면 죄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젊은이를 소개하고 이 젊은이와 여인의 만남을 전하기 위해 장소와 시간을 사용한다. 먼저 장소이다. 처음에 젊은이는 길거리 곧 광장에 있었다. 그리고 거리로 들어선다. 이제 그 젊은이는 음녀의 집에 가까이 다가선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혜 없는 젊은이가 걸아가는 곳이 공공의 장소에서 점점 음녀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이는 8절은 삶의 방향에 대한 가르침이다. 죄는 죄악의 길에 들어서고 그 죄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면서 시작된다. 죄는 이렇게 항상 잘못된 방향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공간의 문제와 함께 또 다른 배경은 시간이다. 9절은 이렇게 말한다.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7:9). 때는 ‘저물 때’, ‘황혼’, ‘깊은 밤 흑암 중’이다. 이는 빛에서 점점 어둠으로 변해가는 시점, 초저녁에서 어둠으로, 깊은 밤으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낼 뿐 아니라 지혜 없는 자의 영적 상태를 보여준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빛이 없으면 어둠이 깊어진다. 성도가 인생길에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마음에 있는 빛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어두움과 무지를 밝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신다. 이것이 우리 내면에 있는 예수께서 주신 성령의 빛이다. 다른 하나는, 내 밖에 있는 빛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은 우리 인생길에 등불이 된다. 인생의 빛인 지혜를 얻어야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 진리의 빛이신 예수님 없는 모든 인생은 점점 어두워가는 삶이 되고, 결국 깊은 어둠인 죽음에 이르게 된다.
2) 창녀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
그곳에서 젊은이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잠 7:10).
분명 이 여인은 경제적인 이유로 매춘을 하는 창녀가 아니라 결혼을 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묘사하는 첫 단어는 ‘기생의 옷’(창녀의 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여인의 외적 모습이 기생의 옷을 입었다면 그녀의 내적 상태는 ‘간교한 여인’이었다. 마음이 교활하다는 의미다.
3) 희생양을 찾아 헤매는 간교한 여인
11-12절은 그 간교한 여인의 행동을 마치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찾아 헤매는 듯, 자신이 사냥할 영혼을 찾아 여기저기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습으로 그린다.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잠 7:11-12).
아버지는 그 간교한 여인과 젊은이의 만남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데 이 여인이 젊은이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럼 없는 얼굴로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잠 7:13).
4) 간교한 여인의 치명적인 유혹과 그 결과
이제 아버지는 이 이야기의 생동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14절에서부터는 간교한 여인이 일인칭 화법으로 등장한다.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잠 7:14-15).
14절의 ’화목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전체적인 문맥 속에 살펴보면 제사를 드린 후 이웃과 함께 나눠 먹는 ‘고기’로 이해하면 되겠다. 아버지는 이 여인의 간교함과 뻔뻔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웃과 화평을 위해 드려져야 할 화목제를 빌미로 성적 욕구를 채우는 패역함을 강조한다.
모든 죄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이 간교한 여인은 자신의 유혹을 신적 축복으로 속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젊은이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유혹한다.
5) 간교한 여인의 성적 유혹
이 여인은 16절에서부터 간교함을 드러낸다.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라는 성적 유혹을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해 침상의 안락함을(잠 7:16-17), 남편의 부재를 강조한다(잠 7:19-20).
해가 져서 어딘가에서 하룻밤 묵어야 하는 젊은이에게 이 간교한 여인의 유혹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최고급의 환경과 죄를 짓고도 탄로나지 않을 조건은 그 젊은이로 하여금 더더욱 그 유혹을 달콤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한다.
6) 유혹에 빠진 자의 결과
아무런 부담 없이 편안히 쉬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성적 욕망을 충족할 수 있다는 여인의 말에 젊은이는 그녀의 집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다시 화자로 등장하며 그 젊은이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잠 7:22-23).
젊은이는 스스로 죽음으로 나아가는 짐승과 같이 미련한 사람으로 묘사되며, 이러한 자들은 결국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어 죽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어리석은 젊은이의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죽음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우매함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고(24-27): 음녀의 길의 결과
음녀의 유혹에 대한 아버지의 가르침은 다시 한번 ‘아들들’을 부르면서 정리된다. 음녀의 유혹에 빠져 생명을 잃은 자들이 많기에 그녀의 집은 죽은 자들이 걸어가는 스올의 길이고, 그녀의 방은 사망의 방이라 불린다.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 7:24-27).
간음은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죽이는 자살 행위다. 다윗의 인생도 그러했다. 승승장구하던 다윗의 인생은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간음의 파괴력을 알기에 예수님도 강하게 경고하셨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맺음말
우리의 힘으로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 죄는 무조건 멀리해야 한다. 죄의 길에 서지 말고, 죄의 시간에 서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날마다 무너지는 곳을 피해야 한다. 날마다 내 삶을 말씀의 빛으로 비추어 죄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