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마음을 지키며 걷는 인생 길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내가 지혜로운 길을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길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고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 4:10-27)
본문 개관
지난주에는 지혜의 세 가지 유익 가운데 두 번째 유익을 살펴보았다. 이제 아버지는 5-9장에서 지혜의 세 번째 유익인 선택의 지혜(잠 2:16-19), 곧 악한 유혹에서 아들을 지켜 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지혜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내 눈이 기뻐하는 악한 자의 길을 택할 것인가.’
본문은 선택의 지혜의 도입부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부분은 10-19절인데, ‘길’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여기서 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을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둘째 부분은 20-27절로, ‘마음’이라는 단어가 핵심어로 등장한다. 이는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지켜야 할 수많은 것들 중 마음을 지키라고 말한다. 마음을 잘 지키면 인생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여 바른길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생에서 만나는 선택의 길(10-19절)
아버지는 아들에게 선택의 지혜를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인생길을 ‘지혜로운 길’과 ‘사악한 자의 길’로 나누어 제시한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각각 ‘생명’과 ‘사명’이 있다고 말한다.
A. 지혜로운 길을 걸으라(10-13절): 생명
B. 사악한 자의 길을 피하라(14-17절): 죽음
C.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18-19절): 빛과 어둠
1) 지혜로운 길을 걸으라(10-13절)
10절은 아버지 담화의 서론으로, 아버지의 명령과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런데 이 동일한 메시지가 13절에도 나타난다. 히브리 문학 구조에서 ‘인클루지오’라고 하는데, 앞과 뒤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가운데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는 11-12절이다.
(10절)
들으라 내 아들아! 나의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생명의 날들이 너에게 많아지리라.
(11절)
내가 너에게 지혜의 길을 가르쳤고
내가 너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였도다.
(12절)
네가 걸어다닐 때에 너의 발걸음이 곤란하지 않고
네가 뛸 때에도 네가 넘어지지 아니하리라.
(13절)
훈계를 굳게 붙들라 이것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왜냐하면 이것이 너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11절에서 자신이 전하는 가르침이 ‘지혜의 길’이고 ‘올바른 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자들이 누릴 구체적인 유익을 12절에서 말한다. 그들은 걸어 다닐 때도 걸음이 곤고하지 않고, 뛸 때도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곤고하지 않다’라는 것은 ‘제한되거나 방해받지 않는다’의 의미로, 곧 원하는 대로 발걸음을 내딛는 여유가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길 안에는 넘어짐이 없다.
성경에서 ‘걷다’라는 표현은 ‘살다’의 의미이기에 지혜의 길로 걸어가는 사람은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뛰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안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악인은 걸려 넘어지면서도 왜 넘어졌는지 모르는 우매한 인생을 살게 된다(19절).
2) 사악한 자의 길을 피하라(14-17절): 죽음
아버지는 이제 사악한 자의 길을 피하라고 한다. 14-15절은 악한 자의 길, 악인들의 길로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명령이고, 16-17절은 그 명령의 이유다.
(14절)
악한 자들의 길로 들어가지 말라.
악인들의 길로 직진하지 말라.
(15절)
이것으로부터 멀리하고 지나가지 말라.
이 길로부터 방향을 돌려 지나가라.
(16절)
왜냐하면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잠을 자지 못하고
그들은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17절)
왜냐하면 그들은 불의의 떡을 먹으며 폭력의 잔을 마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14절에서 두 개의 부정명령을 통해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 것을 말한다. 그리고 15절은 악한 자의 길로 가지 않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길로 들어가지 말고, 한 발도 나아가지 말라.” 악의 길을 보면 멀리하고, 돌이켜 떠나가는 능동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버지는 16절에서 왜 악인의 길을 선택하면 안 되는지를 두 가지 이유로 말한다. 먼저, ‘악의 중독성’ 때문이다. 악인들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파괴하려고 한다. 악인들은 낮에 악을 행하다가 그 악을 다 이루지 못하면 밤에도 악을 행하려는 악에 중독된 삶을 살아간다.
다음으로, 불의의 떡과 폭력의 잔이 그들의 죄를 더욱 부추기기 때문이다. ‘떡’과 ‘잔’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떡과 잔을 마시는 것보다 더 열심히 불의의 떡을 먹고 폭력의 잔을 마심으로 분노와 폭력이 그의 안에 쌓여 죄악을 끊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3)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18-19절): 빛과 어둠
이제 아버지는 지혜를 얻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인생을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로 나누어 설명하며, 빛과 어둠으로 이들의 인생을 요약한다.
(18절)
의인의 길은 새벽의 빛과 같으니
이 빛은 점점 밝아져 한낮과 같으리라.
(19절)
악의 길은 깊은 어둠과 같아서
그들이 넘어져도 무엇으로 인함인지 알지 못한다.
악인의 삶이 밤과 어둠을 배경으로 하는 데 비해, 의인의 삶은 낮과 빛으로 설명된다. 악인의 길은 깊은 어둠 같아서 점점 더 어두워진다. 넘어져도 무엇에 걸려 넘어졌는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이는 악인이 지적, 영적 어둠 속에서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이에 비해 의인의 길은 처음에 초라하나 점점 밝아진다. 발이 딛는 곳마다 여유가 생기고 빠르게 달려갈 때도 거침이 없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생명이 있다.
마음을 지키라(20-27절)
우리가 바른길을 택하기 위해서는 이 길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지혜, 곧 통찰력(명철)이 필요하다. 보이는 것 이면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죄에 오염되지 않은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마음을 지키라고 아들에게 권한다.
1) 지혜로운 선택이 시작되는 마음
4장 두 번째 부분의 핵심어는 ‘마음’이다. 아버지는 20-23절에서는 마음의 중요성을 말하고, 24-27절은 마음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20절)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21절)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네 마음 가운데 지키라
(22절)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을 찾는 자들에게 생명이며
그의 모든 육체의 치유가 됨이라.
(23절)
모든 지켜야 할 것들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왜냐하면 그곳으로부터 생명이 나옴이라.
아버지는 20절에서 아들을 부른다. 이는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20-22절은 ‘마음’에 대한 가르침의 서론으로 아버지의 가르침에 주의하고 그것을 지키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지켜야 하는 이유로, ‘생명’과 ‘육신의 건강’(육신의 회복이나 생기)을 제시한다.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브’는 인간의 모든 생각과 사고의 중심 기관으로 인간 삶의 모든 양식과 결정을 이끌어내는 영혼의 중심을 가리킨다.
‘마음을 지킨다’라는 명령은 ‘생명이 그곳에서 나온다’라는 구절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인생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곳이 마음이기에 우리가 지켜야 할 다른 어떤 것보다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2) 마음을 지키는 방법(24-27절)
성경은 우리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이 쌓이는 창고가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마음에서 나의 입과 눈, 손과 발이 무엇을 행할지가 결정된다. 이처럼 지체와 마음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기에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마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눈과 귀를 통해 세상이 내 마음에 쌓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우리의 말과 눈, 손과 발을 통해 마음을 잘 지키라고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24절)
멀리하라 너로부터 왜곡하는 말을,
구부러진 말을 너의 입술로부터 멀리하라.
(25절)
너의 눈이 앞을 바로 보게 하고
네 눈꺼풀이 너의 앞을 직시하게 하라.
(26절)
너의 발의 길을 평탄케 하라
그리하면 너의 모든 길이 온전히 서리라.
(27절)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비틀거리지 말고
너의 길을 악으로부터 돌아서게 하라.
아버지는 24절에서부터 마음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한다. 먼저 입에 관한 교훈으로, 구부러진 말과 비뚤어진 말을 멀리하라고 한다. 말에 관한 가르침은 잠언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고 사람은 자신이 말한 대로 살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에 대해 말한다. 25절에서 지혜로운 눈을 나타내는 표현은 ‘바로 보다’와 ‘직시하다’인데, 이는 통찰력을 의미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그 너머에 있는 생명과 죽음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초라해 보여도 실패가 아닐 수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는 인생길을 믿음으로 걸어가면 결국 내가 발을 딛는 곳마다 여유가 생긴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그 길 끝에는 생명이 있다. 통찰력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다.
26-27절은 10절의 가르침과 연관하여 발의 지혜에 대해 말한다. ‘발’은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는 기관으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악에서 떠나는 균형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맺음말
내 마음에 무엇이 담겼는가가 우리가 어느 길을 선택할지를 결정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4:6). 예수님께로 가면 항상 진리가 있고 그 진리의 길 끝에는 생명이 있다. 참지혜이신 예수의 마음이 우리 안에 담기면 예수의 길이 보이고 그분이 사셨던 섬김, 내려놓음, 내어줌이 합당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내 마음에 무엇이 담겼는가가 화려한 길을 택할 것인가, 초라하지만 생명의 길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예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에 담아 참된 지혜의 길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