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지혜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잠 3:27-35)
본문 문학적 구조
아버지는 3장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아들에 삶에 어떤 유익을 주는지를 설명한 후(잠 3:1-12), 그렇게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잠 3:13-26).
본문은 3장 마지막 부분으로, 지혜의 두 번째 유익인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공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알려준다(잠 3:27-35).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서야 하는가.” 아버지는 아들에게 공동체 안에서의 삶을 세 가지로 전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공동체를 세우는 지혜1: 구제
첫째, 이웃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는 도와야 한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아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지혜로운 행동은 이웃을 돕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것을 27절에서는 일반적인 원리로, 28절에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27절)
선을 거두에 들이지 말라. 이것의 주인으로부터
선을 행함이 너의 손에 있을 때.
(28절)
너의 이웃에게 말하지 말라. “가라, 그리고 다시 오라, 내일. 내가 너에게 주리라.”
만일 너에게 있을 때.
우리가 이 구제의 원리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27절과 28절에 ‘선을 행함이 너의 손에 있을 때’, ‘만일 너에게 있을 때’라는 조건절이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빌려서 도와주라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선을 베풀 여유가 있을 때, 그것이 필요한 사람이 다가와 요구하면 그것을 거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이웃 구제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풍요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창조의 목적을 이루도록 주신 기회라는 것이다.
지혜의 두 번째 유익은 공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잠 3:9-15). 구제는 하나님의 ‘공의’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공의롭게 대하시기에 그들의 능력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풍요를, 누군가에게는 결핍을 주신다. 하나님이 누군가에서 풍요를 주셨다면 그것은 반드시 부족한 자에게 흘러가야 한다. 그래서 풍요를 받은 사람은 결핍에 처한 자를 도와야 한다. 이것이 이웃을 향해 ‘공평’을 이루는 길이고,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자신의 창조적 사명에 대해 ‘정직’하게 살아가는 지혜자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공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한 삶을 이웃과의 관계에서 실현하게 하신다.
또한 27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한글 성경은 ‘마땅히 받을 자’(히브리어 성경은 그것의 주인)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나에게 넘치는 것이 있는데 누군가 와서 그것을 요구하면 이제 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것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웃 구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모든 풍요에 대해 마땅히 행할 바이다(잠 14:31, 19:17, 22:2, 28:27).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잠언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지 않는 사람은 가난한 자를 지으신 창조주를 무시하는 것이고(잠 14:31),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잠 19:17).
28절에서는 구제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원리를 보다 더 구체적인 실천으로 가르치는데,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에서 도우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교훈에서도 나타난다(마 5:42, 눅 6:30, 31). 특별히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우리가 이웃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를 도와야 하는지를 그림처럼 보여준다.
예수님은 이웃 구제의 원리를 확장하여 원수를 사랑하기까지 나아가라고 한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눅 6:35).
공동체를 세우는 지혜2: 분쟁과 다툼을 그치는 것
둘째, 이웃에게 악의가 없는 한 분열과 다툼, 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여기서도 29절에서는 일반적인 원리를, 30절에서는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전한다.
(29절)
너의 이웃에게 악을 계획하지 말라,
그가 너와 함께 신뢰하며 살고 있거든.
(30절)
어떤 사람과 까닭 없이 다투지 말라,
만일 그가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29절의 ‘악을 계획하지 않는 것’은 30절의 까닭 없이 다투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이 명령은 뒤따르는 조건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그가 너와 함께 신뢰하며 살고 있거든’, ‘만일 그가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결국 이 구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공동체의 ‘평안’이다. 만일 이웃이 공동체의 평안을 파괴하는 행위를 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마땅히 겨루어야 한다. 하지만 이웃이 평안을 원하고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그들과 다투고 분열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를 먼저 파괴하는 행동이다. 살아가면서 다툼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싸움은 선한 싸움이 되어야 하고 싸우는 방식 역시 선해야 한다.
공동체를 세우는 지혜3: 폭력의 사람을 따르지 않는 것
셋째, 포악한 자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이웃을 돕지 않는 사람,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을 31절에서 ‘포악한 자’(히브리어의 의미, 폭력의 사람)로 의인화시켰다. 그리고 그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31절)
폭력의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라.
너는 그의 어떤 길도 선택하지 말라.
폭력을 뜻하는 히브리어 ‘하마스’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상황과 형편을 돌보지 않고 하는 말과 행동을 가리킨다. 누구나 이런 사람이 될 위험성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샬롬’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든 선행의 이유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이웃이 도움을 청하거든 도우라’, ‘이웃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거든 먼저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지 말라’, ‘폭력의 사람이 되어서 너의 뜻을 공동체 안에서 관철시키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32절에서 그 이유를 제시한다.
(32절)
왜냐하면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혐오하심이나
정직한 자는 그의 신뢰하심이라.
(33절)
여호와의 저주는 악인의 집에 있으나
여호와는 의인의 처소를 복되게 하시느니라.
아버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며 두 유형의 사람을 제시한다. ‘정직한 자’(의인)는 공동체의 평안을 위해 공헌하는 자이고, 이와 반대되는 자는 ‘패역한 자’(악인)이다.
‘패역한 자’는 ‘잘못된 길을 걷는 자’인데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나 굽은 길을 걷는 자들이다. 곧 이웃을 돕지 않고 이웃을 해하려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은 공동체를 분열하는 자를 가장 혐오하신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정직한 자(올바른 길을 걷는 자), 곧 그의 창조적 사명을 다하는 자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신뢰하심이 함께하신다고 말한다.
33절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것은 ‘집’과 ‘처소’이다. 이는 한 사람이 공동체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의해 그들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이들이 속한 ‘집’과 ‘처소’, 곧 공동체에까지 영향을 줌을 보여준다. 그리고 34-35절에서는 이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말한다.
(34절)
여호와는 비웃는 자를 비웃으시나
여호와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도다
(35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유산으로 받으려니와
어리석은 자는 수치로 높아질 것이다.
34절의 비웃는 자는 ‘이웃을 비웃는 사람들’을 말한다. 성경은 악한 자들이 그들의 행위대로 그 운명이 결정됨을 강조하기 위해 ‘비웃다’(히브리어, 리쯔)라는 동사와 그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비웃는 자)를 같이 사용하여, 누구든지 이웃을 조롱하는 자는 여호와의 조롱을 받을 것을 강조한다.
아버지는 35절에서 지혜로운 자와 그렇지 않은 자(어리석은 자)를 대조하며 말하며 3장 전체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영광(물질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인정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유산으로 주어지나, 어리석은 자는 많은 것을 움켜쥐나 결국 수치를 당하는 인생이 될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나는 경제 원리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 11:24).
맺는말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살게 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자와 부한 자, 연약한 자와 강한 자가 함께 살게 하셨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공의와 공평, 정직한 삶을 이웃과의 관계에서 실현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흘려보내라. 이웃과 다툼을 일으키지 말고 평화의 사람이 되어라. 자신의 뜻을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이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의 삶 가운데 넘치고 공동체는 회복될 것이다. 이렇게 복의 통로가 되는 주의 자녀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