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일곱 번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왕하 5:8-14)
엘리사와 예수 그리스도
엘리야는 긍휼의 선지자로 불리는데,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라는 그의 이름과 같이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긍휼의 마음으로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이방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또한 엘리사는 기적을 많이 행한 선지자로 유명한데,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엘리사의 기적은 상당히 유사하다. 이는 예수님께서 엘리사의 사역을 기적으로 완성하셨음을 보여준다.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인 나아만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엘리사의 수많은 사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나아만의 치유 사건이다.
엘리야 시대 북이스라엘의 가장 큰 적은 아람이었다. 그런데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 ‘크고 존귀한 자’였다. 이 표현의 원어적 의미는 권세가 있고 힘이 있고 왕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나아만을 통해 아람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민족과 열방의 왕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심을 보여준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왕하 5:1).
그러나 나아만은 ‘나병환자’였다. 권세와 권력을 가졌으나 그의 몸은 수치와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모습인지 모른다.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듯하나 마음 깊은 곳이 병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나아만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 외에 치료할 수 없는 깊은 병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절박한 마음에 찾아온 구원의 길
나아만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도움은 이스라엘 땅에서 잡아온 어린 소녀를 통해서 왔다.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왕하 5:3).
이 소녀의 말을 붙잡은 나아만은 이스라엘 땅으로 가게 된다. 이는 아람에게도, 이스라엘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만약 나아만이 이스라엘에서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은 아람에게는 큰 손실이었고, 전쟁의 시작을 의미하였다. 만약 나아만이 병을 고침받지 못하다면 그것 역시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왕은 자신의 옷을 찢으며 한탄하였다(왕하 5:7).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나아만
엘리사는 이 이방 군대 장관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다. 그래서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말한다(왕하 5:8). 드디어 나아만은 엘리사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아만을 만나지도 않고 이렇게 말한다.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왕하 5:10).
요단강과 일곱 번의 씻음
엘리사의 말을 들은 나아만은 분노하였다(왕하 5:11). 이는 그가 수질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사가 강조한 것은 ‘강물’이 아니라 ‘일곱 번’ 강에 들어가는 믿음이었다. 엘리사가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나아만의 치료가 단순한 질병의 치료가 아니라 그의 영혼, 그의 존재가 다시 하나님 앞에 새롭게 되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둘째, 그의 마음의 소원을 간절함으로 보이라는 것이다. 그 간절함으로 일곱 번이라도 요단강에 들어가는 믿음의 수고를 하라는 것이다. 만약 믿음의 수고 없이 기적이 이루어진다면 사람들은 이것이 우연이다, 혹은 내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절박하고 간절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믿음의 수고를 하게 하신다.
나아만의 변화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치유함 받고 나서 변화된 나아만의 모습이다. 먼저,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람의 신 림몬을 섬기지 않겠다고 결단하였다(왕하 5:15-18).
하나님은 성도들을 때로 절박한 상황에 두신다. 이는 기적을 통해 나의 삶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된다.
다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전에 이스라엘 땅은 나아만에게 정복하고 약탈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관점이 바뀌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흙을 가져가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를 드리겠노라 고백한다(왕하 5:17). 침략의 대상이 되는 곳의 땅을 가져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다. 하나님을 몰랐을 때는 나의 만족을 위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나의 행복을 위해 약탈할 탐욕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제 예배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하나님의 땅이 되고 예배가 처소가 되도록 우리의 시선이 바뀐 것이다.
맺는말
우리의 마음에 간절함이 있는가. 요단강에 일곱 번 내려가는 믿음의 수고를 할 절박함이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우리의 삶에 변화가 있었는가. 나아만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