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사람을 위한 왕, 하나님을 위한 왕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삼상 9: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1-13)
사사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전환
사사시대의 문제는 왕이 없었다는 데 있다(삿 21:25).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왕정시대의 문을 연다. 하나님은 이미 왕을 세울 절차와 왕이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해 두었다(신 17:14-20). 그러니까 왕정이라는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는 데는 두 가지 잘못이 있었다. 하나는 시간의 문제다. 하나님은 룻기를 통해 다윗이라는 사람을 사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왕으로 세우셨음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의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왕을 구하였다. 다른 하나는 잘못된 동기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눈에 보이는 왕의 통치를 요구하였다. 그렇게 해서 세운 왕이 사울이다.
사람의 관점에서 뛰어난 왕
사울은 ‘요청된 왕’, ‘요구받는 자’라는 이름처럼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왕이었다. 그는 사람이 보기에 좋은 왕이었다. 전쟁 능력이 뛰어났고, 리더쉽 있고 행정 능력도 좋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매우 슬퍼하셨다(삼상 15:11). 이는 사울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자신의 명예와 욕망을 채우는 데 사용하고, 하나님에게는 등을 돌리고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좋은 사람 다윗
다윗은 ‘지극히 사랑받는 자’라는 이름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이스라엘을 통치할 왕으로 부르심 받았다. 그런데 사울과 달리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삼상 16:12).
이 구절을 원문에서 번역하면 이렇다. “그는 그을린 피부에, 눈이 아름답고, 보기에 좋은 사람이었다.” 피부가 그을렸다는 것은 목동으로서의 성실함을 드러낸다. 눈이 아름답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살아 있음을, 보기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었다는 의미다.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
그러면 하나님은 왜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사용하셨는가. 하나님의 선택 기준을 살펴보자. 사사기는 폭력적인 이야기로 마감되는데 그 사건은 기브아성, 베냐민 지파와 관련된다. 그런데 사울이 베냐민 지파 기브아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울은 왕이 없던 사사시대의 혼돈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룻기는 사사기의 희망을 보여주는데 베들레헴, 유다 지파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다윗이 유다 지파, 베들레헴 사람이다. 그러니까 성경은 사사 시대의 문제를 룻기가 해결할 것처럼, 사울의 문제를 다윗이 해결할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사울과 다윗의 두 번의 실수와 대응
이처럼 사울과 다윗은 출발이 달랐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그들의 인생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사울과 다윗의 인생에는 크게 두 번의 죄악이 있었다. 그 죄악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을 때 한 사람은 변명하고 한 사람은 엎드려 회개하였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무결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는 사무엘이 오지 않자 자신의 제사를 드리고 나아갔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엄중히 경고하신다(삼상 13:13-14). 그런데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 순종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게 된다(삼상 15:23). 그런데도 사울은 회개하지 않는다(삼상 15:30).
다윗도 두 가지 큰 범죄를 저질렀다. 먼저 밧세바와의 간음사건이다. 간음과 함께 살인까지 감행한 왕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인구조사다. 다윗의 인구조사로 인하여 7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된다.
아마 세상 법정에서 판결을 받는다면 다윗이 훨씬 더 중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택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기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여기서 ‘중심’은 ‘마음’을 뜻하는데, 마음은 우리 사고와 생각, 행동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하나님은 그곳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보신다. 사울의 마음에는 하나님과 세상이 함께 있었다. 그는 세상이든 하나님이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것에 자신의 마음을 두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고에도 회개하지 않았다. 세상으로 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이 있었다. 성경은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한다(행 13:22). 헬라어 원문에서 해석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쫓아다니는 자’라는 의미다. 그는 부족하고 연약하였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항상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람, 죄 없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다. 연약해도 상관없다. 부족한 것도 괜찮다. 죄가 있으면 용서해 주신다.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은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그래서 교만한 의인보다 회개하는 죄인을 사용하신다.
맺는말
여러분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 세상과 하나님이 같이 있어서 언제든지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따라갈 수 있다면 하나님께 의미 없는 사람이다.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엎드릴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역사를 바꾼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도 그렇고 지금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