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언약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룻 3:6-13).
시대적 배경
사사 시대의 문제는 왕이 없는 것이었다(삿 21:25).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을 준비하셨는데, 그 왕이 태어나도록 구원의 문을 연 여인이 바로 룻이다. 룻은 오벳을,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다윗의 탄생은 단순히 이스라엘 왕에 대한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다.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다는 것, 다윗의 자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대한 청사진까지 보여준다.
룻의 이름은 ‘아름다움’, ‘찬란함’, ‘(여인들 사이의) 우정’의 의미이다. 그런데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도, 사람들 간의 의리도 없었다. 속임과 배신, 비참이 가득하던 시대였다.
사사기는 한 레위인이 간음한 첩을 데리러 베들레헴에 갔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그 레위인은 기브아에 유하게 되고, 그 성읍의 불량배들로 인하여 첩은 처참하게 죽임당한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과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그로 인하여 베냐민 지파 11만 명이 죽임당하게 된다.
룻기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시작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룻 1:1).
‘베들레헴’의 의미는 ‘곡식 창고’, ‘양식의 집’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안 평야 지대에서 자라는 밀과 보리를 베들레헴에 가져와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산악지대에 있는 주요 도시들에 공급하였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 양식이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룻의 등장
베들레헴에 흉년이 닥치자 유다 자손 가운데 한 가정이 모압 땅으로 이주한다. 그런데 그 가정의 엘리멜렉과 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게 된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하나님의 주신 은혜의 땅에도 흉년이 올 수 있다. 흉년의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보다 세상의 풍요를 따라간다. 그러나 흉년의 때는 믿음으로 이겨나가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인내함으로 기다리면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를 주실 것이다.
보아스를 예비하신 하나님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보아스를 등장시키신다. 그런데 보아스의 어머니는 여리고 기생 라합이었다. 보아스 위로는 라합이, 옆으로는 룻이 있었다. 그런데 라합과 룻은 예수님 족보에 기록된 여인들이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5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마 1:3, 5, 6, 16), 이들 모두 사회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마태는 이러한 여인들을 예수님의 족보에 넣음으로써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알려준다. 이스라엘을 넘어서는 구원의 확장성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와 죄 용서의 깊이를 보여준다.
보아스와 룻의 현명한 선택
그런데 성경은 보아스와 룻을 같은 표현으로 말한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룻 2:1). ‘유력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동일한 단어가 룻을 설명할 때도 나온다.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룻 3:11). 여기서 ‘현숙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하일’이다.
결국 보아스와 룻의 사명은 같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경은 보아스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룻 3:9).
‘기업 무를 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고엘’은 ‘(누군가를) 구원하다’라는 단어의 명사형으로, ‘구원자’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레위기는 구원자의 역할을 두 가지로 말한다. 하나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손이 없을 때 아이를 낳게 해주는 것이다. 이 일들에는 당연히 경제적 손실이 따라온다. 그렇지만 보아스는 고엘을 행하기로 결정한다.
룻은 20세 전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죽었기에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젊은 남자를 택하지 않고 율법을 따라 보아스와 결혼한다.
보아스와 룻의 지혜로운 선택으로 오벳이 태어났다. 사사시대 350년의 어둠을 마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울 왕이 태어나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룻 4:17).
적용
보아스와 룻의 고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적용된다. 율법적으로 우리가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받으려면 예수님과 친족 관계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가장 가까운 친족이 나의 죄악과 빚을 제하고 구해주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 삼으셨다(롬 8:15). 이렇게 고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되고, 우리에게 사명으로 주어졌다. 우리도 우리 형제자매의 고엘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어려울 때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