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사명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할 때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삿 16:23-41)
삼손 이해하기
사람들은 삼손을 대체로 이렇게 이해한다. 첫째, 나귀의 턱 뼈로 천 명을 때려 눕힌 장사(壯士)로 여긴다. 이러한 해석은 성경의 인물을 영웅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본 결과다. 둘째, 들릴라와 염문에 빠진 타락한 사사로 그린다. 이는 삼손의 인생을 잘못된 사랑과 그 사랑의 결과로 해석한 관점이다. 셋째, 삼손을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으로 본다. 특별히 삼손이 죽는 장면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사탄의 나라를 무너뜨린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삼손의 인생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무리하게 예수님과 연결시킨 결과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태어났고 하나님께로부터 분명한 사명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나실인답지 않은 방탕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그린다(히 11:32). 그러면 우리는 삼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삼손의 출생
삼손, 사무엘, 세례 요한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아이가 없던 집에 태의 문을 열어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과 여호와의 천사가 나타나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움으로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의 문을 열었다. 그는 다윗의 나라를 여는 왕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함으로써, 다윗의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한다.
삼손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에게서 구원하는 것이었다(삿 13:5). 이스라엘은 후기 청동기 문명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섰다. 그때 블레셋은 이미 철기 문명을 구가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지역은 산악지대였으나 블레셋은 가나안에서 가장 비옥한 해안지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견줄 수 없는 문화적, 군사력 차이가 있었다. 삼손이 태어나기 전까지 이스라엘에게 블레셋은 대항할 수 없는 적이었다. 그렇지만 삼손의 때에 블레셋을 향한 이스라엘의 반격이 시작된다. 100년 동안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이 이어지고 다윗의 시대에 그 전쟁이 막을 내린다. 삼손의 사명은 거대한 적 블레셋과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명에 불순종할 때
그런데 삼손의 삶은 그의 사명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삼손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첫째, 사명에 순종하지 않을 때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삼손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 성장했고 하나님의 영은 그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그를 사명의 길로 인도하셨다. 그런데 삼손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 특별히 그의 인생에서 결혼이 문제가 되었다.
삼손은 딤나 여자와 결혼하였다. 딤나는 블레셋 북쪽 지역으로, 삼손이 블레셋인과 결혼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결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손의 잘못된 결정까지 사용하여 블레셋 사람을 치신다(삿 15:15-16). 그 후 삼손은 블레셋 남쪽 지역 가사 지역의 기생을 취하게 된다. 당시 가사는 블레셋의 가장 큰 성, 수비가 견고한 지역이었다. 삼손은 가사의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헤브론 앞산으로 가져간다(삿 16:3). 당시 성을 점령하면 기념품으로 성문을 가져가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니 삼손이 가사의 여인을 취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가장 강한 성을 점령할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하였다. 들릴라는 소렉 골짜기 여인으로, 소렉 골짜기는 블레셋 동편이다. 블레셋 서쪽은 지중해가 있다. 그러니까 삼손은 블레셋 북부와 남부, 동편을 다니며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결국 칠 것을 예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잘못된 결정까지 이용하여 그의 사명을 이루게 하셨다.
성경은 삼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는 표현을 4번 사용한다(삿 13:25, 14:6, 14:19, 15:14). 그가 블레셋과 싸울 때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다. 그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아 그를 사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삼손의 인생은 잘못된 결정으로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된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부르시면 반드시 그 사명을 성취하신다. 그러나 순종하는 자는 복을 누릴 것이고 불순종하는 자는 불행을 겪게 될 것이다.
도구가 주인 될 때 찾아오는 멸망
둘째 도구가 주인이 되면 멸망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삼손은 블레셋과의 승리를 자신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착각했다. 하나님의 도구였으나 자신이 주인으로 여긴 것이다.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삿 15:16).
그는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 자로 부르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주인노릇하면서 결국 비참한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능력은 우리를 망하게 한다.
여인의 무릎에서 사라진 사명
셋째, 세상 속에서 세상의 것을 추구하면 사명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점령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땅에 들어가 즐기고 누렸다. 그들의 문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삼손의 인생도 그러하다. 블레셋을 정복할 사명을 받은 삼손은 지속적으로 블레셋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라보기 좋은 여인을 취하였다. 그리고 결국 들릴라라는 여인의 무릎에서 사명을 잃고 말았다.
삼손이라는 이름의 뜻은 ‘작은 태양’이다. 그런데 들릴라의 이름의 의미는 ‘깊은 밤’이다. 작은 태양이 깊은 어둠을 만나 그 빛을 상실하였다. 성경은 삼손의 사명과 능력이 상실된 곳이 드릴라의 무릎이라고 말한다. 히브리어 무릎은 ‘베렉’이다. 이 ‘베렉’과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가 ‘바락’이다. 하나님이 삼손에게 복을 주셨다고 할 때의 복이다(삿 13:24).
예수님은 우리를 빛으로 부르셨다(마 5:14).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작은 태양, 빛으로 보내셨다. 어둠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의 길을 열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셨다. 그런데 그 세상에서 세상의 무릎을 베고 세상을 즐길 때 하나님이 주신 빛은 어둠을 덮이게 된다. 하나님이 복으로 주신 능력은 세상의 무릎 위에서 소멸된다. 그러면 어느 곳에서도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맺는말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때는 대부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잃고 살 때다.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인생이 점점 허무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에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라. 그것이 우리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