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순종과 자비로 세워지는 가정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9)
부모와 자녀의 관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가정에 관한 가르침을 주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엡 6:1-4), 두 번째 부분에서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다룬다(엡 6:5-9).
바울은 먼저 자녀에게 명령한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순종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파쿠오’는 절대적인 순종을 말한다. 바울은 특별히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한다. 이 구절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부모의 가르침이 주님의 가르침과 부합할 때만 순종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는 ‘옳으니라’를 보면 알 수 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의 의미는 주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상태에서만 온전히 부모에게 순종할 수 있음을,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옳음을 말한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이 구절을 ‘너희가 지금 주께 속해 있기에 순종할 수 있다’고 표현한다.
부모에게 어느 정도 순종하는 것은 사회, 윤리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은혜로 부모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의 부족함을 주님의 은혜로 덮을 때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
또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은혜로 가능하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가능하다. 성경은 부모 공경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전한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생명과 복을 약속한다(신 5:16). 부모는 자녀의 생명의 통로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의 통로인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자녀의 생명도 소중히 보시지 않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다.
바울은 이제 아버지들에게 가르침을 전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이 ‘부모들아’라고 하지 않고 ‘아비들아’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고대 교육의 주체는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교육을 하면 어머니는 그것을 자녀에게 소화시켜 주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나는 자녀들에게 얼마나 삶의 지혜와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하고 있는가.
바울은 아버지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한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골로새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
부모가 감정을 앞세워 일관성 없이 자녀를 질책할 때 자녀는 분노하고 낙심한다. 바울은 오히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한다. 교훈과 훈계는 ‘지혜’와 연결된다. 교훈은 말로 전달하는 삶의 원리를, 훈계는 육신의 훈련을 말한다. 바울은 세상의 원리를 뛰어넘어 주의 말씀을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그들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르치라고 권한다.
종과 주인의 관계
바울은 이제 종과 주인의 관계를 다룬다. 당시 종은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가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직장, 사업체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적용해볼 수 있다.
바울은 종들을 향해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한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5-7).
종이 주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원리는 주님께 하듯 순종하는 것이다. 주인에게 순종하는 삶을 위해 바울이 종에게 제시하는 두 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두려워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두려워 떤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창조 질서에 대한 존중이다. 상사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그 자리, 그 역할을 존중하는 방식이 두려움과 떨림이다.
성실한 마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의 자리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성실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일하는 것이다. 성실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 이것이 순종의 원리다.
둘째, 눈가림 대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보는 사람 없어도 하나님께 하듯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대로 돌려주실 것이다(엡 6:8).
마지막으로 바울은 주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 6:9).
바울은 상전들에게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한다. 종들에게 주었던 권면을 상전들에게 준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종이나 주인이나 각 자리에서 행한 대로 주님이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엡 6:8). 그러니 주인은 종들을 위협하지 말고 선대해야 한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를 더 말한다. 더 높은 주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종이나 주인이나 동일하게 보신다. 주인은 주인의 자리에서, 종은 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역할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동일하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맺는말
바울 신학의 핵심은 아는 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앎이 최종적으로 성취되어야 할 곳은 가정이다. 가정은 우리가 무장 해제되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다. 그래서 가정에서 기독교적 삶의 원리를 잘 실천하면 사회에서도 잘 지킬 수 있다. 그래서 가정은 세상의 기둥이다. 가정에서 이 모든 관계를 훈련하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그리스도인답게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