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3-14)
부르심에 합당한 삶
하나님은 우리를 새 사람으로 부르셨다. 새 사람답게 살아가는 첫 번째 원리는 하나님을 본받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다(엡 4:31-5:2). 두 번째 원리는 빛의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의 정체성을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빛의 자녀가 버려야 할 세 가지 어두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빛이 되었다. 바울은 빛의 자녀가 반드시 버려야 하는 세 가지 삶을 말한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엡 5:3).
음행, 더러운 것, 탐욕은 모두 성적 죄악과 관련된다. ‘음행’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르네리아’는 음란물을 뜻하는 ‘포르노’의 근원이 되는 단어다. ‘더러운 것’은 음행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육신이 타락한 상태에 있는 것을, 탐욕은 음행으로 인해 마음이 타락한 것을 말한다.
왜 이 세 가지를 버려야 하는가. 이것을 행하는 사람들은 우상숭배자이고, 하나님 나라에서 유업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엡 5:5). 성적 범죄를 행하는 자를 우상숭배자라고 하는 것은 당시 모든 성적 타락이 우상 숭배와 관련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죄악이 인격이 되어 음행과 더러운 행동과 탐욕을 품은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이러한 죄악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4).
여기서 ‘누추함’은 ‘추한 말’을 가리킨다. 바울은 추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은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온다. 성경의 인식론은 이렇다. 사람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은 마음에 쌓인다. 마음에 있는 것들이 입을 통해 나오고, 사람은 자신의 입을 통해 나온 말대로 살아간다. 음행, 더러운 것, 탐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를 유혹하는 말, 성적 희롱의 말을 한다면 이는 그의 마음속에 음행과 더러운 것, 탐욕이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이러한 말들을 버리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속고 있기 때문이다(엡 5:6). 교회 밖에서는 아데미 숭배사상이 성적 타락을 정당화하였다. 교회 안에서는 영지주의 같은 이단들이 이원론적인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그들은 영은 거룩한 것, 육은 타락한 것으로 보았다. 영혼만 잘 보호하면 되니, 육신으로 이 세상 쾌락을 즐기는 것을 허용하였다. 교회 안에서도 육신의 타락이 아무 문제 없다는 잘못된 사상들이 생겨난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가르침을 헛된 말로 속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리라 경고한다.
빛의 자녀가 행해야 할 세 가지 빛의 열매
그렇다면 빛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빛의 자녀인 성도가 추구해야 할 삶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 진실함이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그런데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이 깊다. 착함은 선함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계획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하게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고, 또한 진실하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끝까지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는 진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들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야 한다.
빛을 비추어 어둠을 드러내는 성도의 삶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 진실하심대로 살 수 있을까. 바울은 ‘빛’이라는 것으로 우리에게 도전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심, 의로우심, 진실하심을 어두운 땅에 드러내야 할 빛의 사명을 받았다. 우리가 이 빛의 사명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러면서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빛의 자녀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엡 5:11-12).
첫째, 빛의 자녀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오히려 책망해야 한다. ‘책망하다’는 ‘고발하다’는 의미다. 그들의 숨겨진 죄악을 고발하라는 것이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는 사람은 없다(막 4:21). 등경 위에 빛을 두는 것은 어둠을 비추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빛으로 부르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그들의 음행과 더러운 것, 탐욕을 고발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죄악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빛으로 부르신 것은 어둠의 자녀들이 우리의 빛을 통해 자신의 어둠을 깨닫고 주님께 돌아와 그들도 빛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엡 5:13).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빛으로 부르셨다.
맺는말
혹시 빛으로 부르신 사명 앞에서 잠을 자고 있는가. 주저하고 있는가. 이런 우리에게 바울은 말한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빛의 자녀다. 이 말씀 붙들고 오늘 하루도 담대히 살아가라. 어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나아가라.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에 합당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