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LLIN SERMONS

설교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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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설교자 : 김성진 목사 작성일 : 2024.06.23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12)


깨어진 하나님 형상, 깨어진 가정
우리는 인류 첫 가족의 비극을 살펴보려 한다. 그래서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이 시대의 가정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될 수 있을지, 질투와 시기심으로 형제를 죽인 가인의 마음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알아볼 것이다.

가인과 아벨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아들을 낳았는데, 하와는 아들의 이름을 ‘가인’으로 짓는다(창 4:1). ‘가인’이라는 말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남자(잇쉬)를 얻었다’는 뜻이다. 히브리어에는 아들을 뜻하는 단어 ‘벤’이 있다. 하지만 하와는 남자를 뜻하는 ‘잇쉬’를 사용한다. 이는 하와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한 남자’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창 3:15). 하와는 아들을 낳자, ‘하나님, 이 아이가 뱀의 머리를 깨부술 그 남자 되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대감으로 아들을 이름을 ‘가인’으로 짓는다.
이에 비해 아벨의 이름은 ‘헤벨’이다. ‘수증기’, ‘숨’의 뜻이라는 뜻이다. 실체는 있으나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 이것이 헤벨이다. 하와는 어찌된 영문이지, 아벨의 이름은 ‘헤벨’로 짓는다. 마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아벨의 운명을 예언하는 듯하다.

1) 가인과 아벨의 제사
가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양 치는 자가 되었다. 성경은 이들이 드린 제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 4:3-5).
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는가. 많은 학자들은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였고, 가인의 제사는 곡식으로 드린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레위기는 하나님이 곡식을 통해 드리는 제사를 기뻐 받으신다고 말한다. 이들이 드린 제물에는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다른 성경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히 11:4).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차이는 ‘믿음’에 있었다.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음은 그의 ‘예물’이 증거한다. 아벨은 믿음을 예물에 담았다. 아벨의 제물은 ‘양의 첫 새끼’다. 첫 수확에는 오래 기다림과 수고가 집약되어 있다. 아벨은 첫 수확을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이는 이 수확은 나의 노력으로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고백이다. 아벨은 제물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였다. 이에 비해 가인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다(창 3:17). 수확물이 하니님께로부터 왔다는 감격이 없었다. 가인의 제물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제물과 그것을 드린 사람을 동일시하신다. 우리와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동일하게 보신다.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왔는가.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는가. 그 마음이 곧 여러분이다.

2) 분노하고 실망한 가인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자 몹시 화를 냈다. 성경은 가인이 분하여 안색이 변하였다고 말한다(창 4:5). 이 구절을 히브리어 원문은 이렇게 말한다. “가인이 몹시 화가 나 있었고 그의 일굴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가인은 외적으로는 화가 났고, 내적으로는 깊은 실망과 영적 침체를 경험하였다. 이런 가인을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여기서 ‘선’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맞는 삶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죄가 너를 잡아먹을 듯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와에게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다(창 3:16). 이제 가인에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하신다. 죄로 인한 부부 사이의 갈등이 이제 한 사람의 내적 갈등이 되었다(롬 7:23-25). 가인 이후에 아무도 이 내적 싸움을 이길 수 없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죄의 영향력을 무너뜨린다(롬 8:1-2).

3) 가인이 죽인 아벨
그런데 문제는 가인이 하나님의 권고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자기와 경쟁 관계에 있는 아벨을 죽인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형이 동생을 죽인 사건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죽인 사건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죽인 사건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결국, 패역한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사건과 연결된다(눅 11:51).
어쩌다가 ‘한 남자’가 되리라는 소망을 안고 태어난 가인이 하나님의 형상을 죽이는 죄인이 되었는가. 부모의 영향력 때문이다. 가인은 갈등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랐을 것이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받아드려지지 않자 어머니의 마음으로 시기하고 질투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으로 동생을 죽였다.
하나님은 그런 가인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아벨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창 4:9). 너 옆에 동역자로 세운 아벨, 그 아우에게 너는 어떤 사람인지 묻는다. 그러나 가인은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묻는다. 그는 아우를 지켜야 했다. 하나님은 사람을 동산에 세우면서 피조물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셨다. 아벨은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동역자였으므로 그는 아벨을 지켜야 했다.

맺는말
하나님은 가인에게 두 가지를 물으셨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나님은 이 질문을 우리에게도 하신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지체를 ‘함께 그리고 나란히’ 가야 할 귀한 동역자로 여겨야 한다.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나아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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