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사명 [오늘의 말씀] 2017년 02월 21일  인쇄하기인쇄하기

충성스러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고난도 없습니다.

[ 성구 ]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34:19)

[ 내용 ]


편하게 주님을 믿는 길은 많이 있습니다. 단지 주를 믿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믿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찬양집회 잘하는 교회 가서 찬양하고, 성경공부 잘 한다는 교회 찾아가 배우고, 설교 좋다는 교회 찾아가 말씀 듣는 것은 믿음을 즐기는 삶이지 믿음으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섬기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고난도 없습니다. 힘들면 슬그머니 피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고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 사랑을 모른 채 어둠 속을 살아가는 영혼들이 너무나 불쌍해 견딜 수 없어집니다. 그래서 그 영혼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섬기고자 결심을 하면 그 때부터 견디기 힘든 시련들이 다가옵니다.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나아가고, 견디기 힘든 세찬 물살을 헤치며 올라가는 것은 그런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추구해야 할 목표가 있다는 전제 속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분명한 목표가 없는 사람은 비바람이 오면 피하면 되고, 물살이 세면 다른 길로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단은 영혼을 향한 불붙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선한 목표가 생기면 시련은 따라 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을 통해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 분은 고통과 아픔 없이 사명을 감당할 수는 없음을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는 바울과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나타나서 우리의 사명의 삶을 훼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유대인을 대신하여 간계를 쓸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여러분의 가족 중에서 여러분의 섬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여러분에게 간계를 쓰는 유대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악한 영들이 간계를 쓰는 유대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덫과 꾀를 놓아 어찌하던지 우리가 우리의 맡은 바 사명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정황들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고통은 충성되게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입니다. 비록 섬김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그것을 그저 하나의 일로만 생각하고 대충대충 섬기던 사람들이라면 결코 그런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 묵상 ]


선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따라 살려는 충성스러움이 있는 사람들만이 악한 훼방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의 고통을 아십니까? 그 고통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지날 때에 누리는 말할 수 없는 감격을 아십니까?

[ 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100일 교리 묵상: 은혜와 사명 - 부흥과개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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