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그 사랑 여기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Ⅰ. 본문해설
사랑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만 또한 불행하게 하기도 한다. 그릇 사랑하기에 비참해지지만, 때로는 옳게 사랑하기에 고통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행복이 사랑하고 사랑받음에 있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랑을 많이 말하지만 그만큼 행복하지 않다. 그 사랑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II. 그 사랑 여기에
누구나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지는 않다. 모든 사람이 찾아야 할 진정한 사랑은 어디 있을까? 성경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요일 4:10).
A. 아들을 보내심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이시다. 사랑할 대상이 없으시던 때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은 곧 사랑이셨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볼 수 있는 사랑으로 시간 안에서 나타났다. 바로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리시기 위함이었다(요 3:16).
인간은 늘 사랑을 한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항상 사랑했으나 그 사랑이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 사랑 안에 참 생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과 연합하여, 사랑 받으며 살도록 태어났다. 그것이 영적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그 생명이 끊어진 채 살아간다. 그래서 참된 행복에 이르는 사랑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 사랑 이야기다. 역사와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보여준다. 구약은 율법을 통해서 복음을 보여준다. 신약은 복음을 통해서 율법을 가르쳐준다. 구약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은 신약에 나타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 사랑은 더 이상 희미하게 암시되거나, 확인할 수 없도록 감춰진 사랑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밝히 나타난 사랑이다. 하나님의 외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그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셨나?
B. 화목제물 되심
화목제물은 불화한 사이를 화해시킬 목적으로 바쳐진 희생제물을 뜻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한 관계는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깨졌다. 하나님은 죄인에 대해 진노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 아담의 범죄 후 두 가지 은총을 즉시 베푸셨다. 메시아의 예언과 인간 죽음의 형벌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한시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진노 중에도 여전히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의 노여움을 푸는 것이 화목제물이다. 이것은 인간과 소통하기 위한 표현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 속에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러한 관계 없이는 본래 창조된 목적대로 살 수 없으며 행복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은 보상받으셔야 할 만큼 손해를 보실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목제물로 다시 당신과 교제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배려다.
구약에서 짐승을 제물로 바쳐서 얻는 교제의 기회는 일시적이었다. 교제의 문은 잠시 열렸다 닫혔다. 이로써는 영원한 화목을 이룰 수 없었다. 그것은 앞으로 나타날 영원한 구원의 그림자였다. 영원히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바쳐져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목을 이루게 되실 예수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분의 희생적 죽음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 동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사랑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바쳐지게 하셨던 것이다. 자기의 소중한 아들을 죽게 해서라도, 우리를 구원하여 당신과 화목한 관계 속에서 살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요일 4:9).
인간세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랑은 이 사랑의 그림자다. 심지어 자연세계에서 볼 수 있는 상호의존이나 돌봄까지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본 뜬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원래의 사랑은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라고 한 것이다.
구약에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행하신 수많은 구원과 기적들이 실려있다. 그것들은 나타날 완전한 사랑의 예고편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을 사람의 감각으로 볼 수 있게끔 인격과 말과 삶으로 보여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의 충만한 정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났다(롬 5:8).
인간의 불행과 고통은 질병의 증상이다. 그 본질적인 원인은 하나님과의 불화에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과 화목하게 하시고자 그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될 수 있다. 화목한 관계를 통해서 이제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하늘 자원을 공급해주신다. 이로써 우리로 하여금 참으로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게 하신다.
III. 적용과 결론
사람들은 사랑받지 못해 외로운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지 못하기에 외로운 것이다. 화목제물로 죽으신 하나님의 아픔이 곧 우리를 향한 사랑의 증거이니, 그를 믿는 자가 사랑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