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믿음과 시간 · 공간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1-22)
Ⅰ. 본문해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인 야고보가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서 박해를 받고 있는 교인들을 위해 쓴 편지이다. 당시 이 교회에는 핍박으로 인한 분열, 만연한 세속주의 풍조로 실천 없는 믿음이 유행하였다. 야고보는 이러한 현실을 엄중히 비판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 말한다.
Ⅱ. 야고보서의 비판과 오해
야고보 선생의 비판의 요지는 이것이다.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아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라는 것이다(약 2:19). 아브라함의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해진 것처럼 행위가 없는 삶으로 믿음을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약 2:26).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야고보서는 역사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약 2:17, 26). 믿음과 행위를 대조시켜 이단들을 양산하였다는 비판도 있었고, 복음 신앙을 떠나 율법적 행위를 강조하였다는 비판도 있었다. 야고보의 신학적 입장을 의심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야고보서에는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와 함께 중요한 기독교 사상이 담겨 있다.
Ⅲ. 시간․공간의 문제
A. 네 종류의 믿음
성경은 네 종류의 믿음에 대해 말한다. 첫째로,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실에 대해 지적인 동의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도덕적, 영적인 반응은 없다. 둘째로, 씨뿌리는 비유에서의 돌밭과 가시밭과 같은 일시적인 믿음이다. 셋째로, 자신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혹은 기적은 자신을 위해 발생한다고 믿는 기적적 믿음이다. 넷째로, 중생한 마음에 뿌리내린 능동적 믿음이다.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믿음은 네 번째 것이다.
B. 야고보서의 언어플레이
야고보 선생은 야고보서에서 믿음이라는 같은 단어를 다음 두 가지로 사용하였다. 하나는, 당시 유포된 것으로 지식으로는 동의하나 영혼에는 진정한 변화 없이 생겨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이다. 다른 하나는,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으로 변화된 본성에서 사랑이 밖으로 뻗어 나가는 믿음이다.
야고보는 참믿음이 아닌 것과 참믿음 둘 다에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는 당시 수신자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믿음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논증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약 2:21). 이는 그의 순종 때문에 불완전하던 믿음이 온전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 아브라함이 그의 믿음을 표현함으로써 “그가 가지고 있던 믿음이 온전한 것이었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였다.”라는 의미이다.
C. 문제의 해결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영혼의 변화를 통해 본성에 변화가 생긴 믿음이다. 우리가 구원 얻을 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성향을 주신다. 그리고 영혼과 생활에 변화를 주신다. 그러나 내면과 외면의 일치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독립적인 인간의 의지를 배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된 본성과 우리 안의 부패한 자신 사이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순종하기도, 불순종하기도 한다.
야고보는 참믿음이 없으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질타하였다. 이는 그들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도록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삶은 이기심으로 거듭나지 못한 내면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완벽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믿음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아보고 시대에만 있었던 위험이 아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하게 이신칭의의 교리를 그릇된 방법으로 이용하는 방종한 시대이다. 여러분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의 진실성을 표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Ⅳ. 결론
하나님을 기뻐하며 산다는 것은 심리적 연애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피 흘리고 죽음으로써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이제 우리가 시간과 공간 안에서 그분을 섬겨 그분을 기쁘시게 할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분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은 유한하다. 인간에게 주신 시간과 공간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는 장임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