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불행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2:22-23)
Ⅰ. 들어가는 말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농부가 있었다. 어느 날 악마가 그에게 해 뜰 때부터 출발하여 해지기 전까지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면 그가 거쳐왔던 땅을 모두 그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그는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 그는 출발했던 자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만 탈진해서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평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불행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오늘날도 이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II. 불행이란 무엇인가?
행복(幸福)에서 행(幸)은 ‘우연히’, ‘어쩌다’, ‘요행으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불행은 요행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요행은 일반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인간은 요행 없이 살아간다. 국어사전에도 불행을 ‘행복하지 않음’, ‘일이 순조롭지 않거나 탈이 많음’이라고 정의한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은 끝없는 불행의 연속이라는 사실이다.
A. 끝없는 불행
전도자는 일평생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고 살았다. 그러나 그는 인생이 행복하지 않으며 허무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전 2:22). 전도자가 헛되고 헛되다는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인간이 하는 일이 허무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허무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허무하고 끝없이 불행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존재의 크기다. 우주에서 한 인간의 크기와 수명을 생각해 보면 인간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지 알 수 있다.
둘째로, 존재의 가치다. 역사는 인간의 위대함도 말하지만 전쟁과 살상과 같은 인간의 야만도 함께 고발한다. 이런 끔찍한 야만성은 가정폭력 등으로 개인의 삶에서도 나타난다.
셋째로, 미래를 알 수 없다. 인간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며 현재에서 개인적 평안과 물질적 부요를 누리며 살아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꿈은 사고와 질병, 가족관계의 파괴, 치매와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 짓밟힐 때가 많다.
B. 불행을 직시함
인간이 불행한 현실을 직시할 때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다. 하나는, 하나님이 없는 선택이다. 그는 운명에 체념한다. 허무하게 살다가 죽을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운명이라 생각하며 체념하는 것이다. 혹은 불행한 현실을 회피한다. 물질과 돈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은 바로 인생의 불행을 회피하는데 쓸 자원을 미리 마련하고자 하는 욕구다. 그러나 회피는 죽어야 할 운명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인간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이 세상을 살고 자신의 인생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 인생은 불현듯 끝날 것이고 그 후에는 살아온 삶에 대한 심판이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끊임없이 위락에 빠져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삶의 마지막은 끝없는 영적 어둠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서 24시간 자신의 기원과 운명을 놓고 씨름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여가와 휴식, 오락, 기분 전환하는 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정당한 대가로 얻은 재물, 돈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의 참된 목적을 따라 다시 살기 위한 것이어야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불행을 직시할 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 우주와 인간, 심지어 나 자신으로부터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기에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것이다. 유한한 인생이 끝난 후 사후 세계가 있음을 아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것이다. 그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신뢰하여 자신을 맡기는 의존이다. 이것으로써 불가해한 인생에 대해 이치를 깨우치는 것이다.
전도자가 헛되고 헛되다고 울부짖은 것은 하나님 안에서의 행복을 말하기 위한 전주곡이다. 그러니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시하길 바란다. 그리고 소망을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두라. 그분을 붙들어 인생의 허무를 이기고 영원을 향해 가는 순례자가 되기를 바란다.
III. 적용과 결론
불행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 사실에 좌절하고 낙담하는 대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자. 그분만을 의지하며 인생의 불행과 허무를 이기길 바란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 Mar.21 주일오전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