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눅 19:41-46)
Ⅰ. 본문해설
본문은 잇달아 발생한 두 사건을 보도한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사건과 성전을 정결케 하는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가 환영하고 찬송했으나 그분께서는 소리내어 우셨다. 수많은 대적과 마귀의 위협에도 기죽지 않으셨던 그분이 우신 것은 영적인 통찰로 예루살렘을 보셨기 때문이다(눅 19:41-42).
II. 만민이 기도하는 집
A. 평화를 모름
예루살렘은 하나님과의 평화를 몰랐다. 일찍이 모세 시대부터 하나님께서는 한 곳을 지정하여 거기서 제사하게 하셨다. 왕국이 세워진 이후에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원부터 국가적 위기 앞에 드리는 탄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성전에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간절히 아뢰었다. 그럴 수 없는 이들은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다. 그랬던 예루살렘이 하나님과의 평화를 상실했다.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은 가르치지 않거나 잘못 가르쳤으며 백성들은 잘못 믿거나 믿지 않았다. 이와 같은 예루살렘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님께서는 영적 통찰로 꿰뚫어 보신 것이다. 그리고 탄식하듯이 말씀하셨다.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4).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몰랐다. 그러나 그 후로부터 약 40년 뒤 예언은 이루어졌다. 예루살렘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대문이 불에 타고 전 도시가 로마에 점령당했다. 예루살렘 최후의 날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어 그들이 뉘우치길 바라셨으나 끝내 돌이키지 않았다. 다른 도시는 몰라도 예루살렘은 깨어 있어서 임박한 심판을 온 이스라엘에 알려야 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잠들어 있었다. 이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깨뜨리고 반역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와 영적인 것들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B. 잠든 성전
통곡을 그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셨다.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마치 이변을 만나신 듯 분노하고 흥분하셨다. 성전 안에서 돈 바꾸는 자들과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상과 의자를 엎으셨다. 이는 성전을 정켤케 하신 사건이었다.
당시 성전에서는 제사에 쓸 동물들이 거래되고, 돈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행이었고, 제사와 헌금을 위해 이루어진 일이기도 했다. 아무도 이 일에 대해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진노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셨기 때문이다.
C. 기도하는 집
진노 끝에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막 11:17). 이것은 원래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자 예언이었다.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 교회가 어떤 모습이 될지를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은 교회와 기도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준다. 첫째는, 기도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섬김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을 또 다른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 되는 것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이었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적 열망에서 멀리 떠나 있었다.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었고, 성전은 세속화되었다. 성전은 마땅히 구원받을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했고, 기도함으로써 교회가 하나님의 집임이 뚜렷하게 드러나야 했다. 이것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이며, 그것 없이 교회는 존재의 목적을 다할 수 없다.
둘째는, 매매하는 일과 돈 바꾸는 일은 기도에 방해가 된다. 기도는 단지 언어가 아니며,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더 깊이 기도하지 못하거나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먼저 마음속에 있는 매매하는 자를 몰아내고, 돈 바꾸는 상을 엎어라. 그래야 마음이 나뉘지 않고 열렬한 기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III. 적용과 결론
심판을 앞에 둔 예루살렘 성 한복판에는 잠든 성전이 있었다. 이처럼 자신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교회는 결코 기도하는 집이 될 수 없다. 깨어 있는 성도가 모인 교회가 깨어 있는 교회다.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되게 하라. 이 일을 위해 여러분이 먼저 기도의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