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제자들을 보내심
“…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5-38)
Ⅰ. 본문해설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기에 접어든 때에 일어난 일로, 예수님의 3중 사역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유하시는 일을 위하여 열두 제자를 파송하는 장면을 기록한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있어서 분수령이 되는 이 사건은, 우리가 이 세상에 파송된 이유와 이 세상과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그림처럼 보여준다.
Ⅱ. 제자들을 보내심
A. 무리를 보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기 전에 무리를 보셨다. ‘보다’를 뜻하는 헬라어는 ‘어떤 사물의 배후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리킨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백성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로 의료나 물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을 바라보셨을 때 그들의 마음과 영적인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외관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었다.
우리도 예수님이 무리를 바라보셨을 때 가지셨던 이 시각으로 세상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이 세상과 구별되는 것은 세상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과 역사, 인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교회는 정확한 영적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또 인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영혼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B. 불쌍히 여기심
예수님은 영적인 통찰로 백성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불쌍하다’라는 말은 ‘창자에 이르기까지 감동을 받다.’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하셨다.”의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이토록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은 그들이 목자의 돌봄을 받지 못해 고생하고 버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탄식을 생각나게 한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 떼가 노략 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겔 34:8).
성경은 곳곳에서 인간을 양으로 비유한다. 양은 독립하여 살지 못하고 인간 가까이에서 인간의 도움과 돌봄을 받으면서 살도록 만들어졌다. 양과 같이 모든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사랑 안에서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행복해지기를 원하였고 이것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인간이 발달된 문명 속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살지만 그것이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천 년 전 가난한 사람들을 보실 때 마음이 아프셨던 것처럼 기술의 발전을 누리며 호의호식하는 현대인들을 보실 때에도 마음이 찢어질 듯하실 것이다. 이 세상의 물질의 발달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상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복음만이 이 상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 마음은 우리에게도 전수되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은 목회자와 신자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고 마르틴 루터가 말했듯이 목회자와 신자는 한 마음이 되어 목자 잃은 것 같은 영혼들을 위한 녹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자의 모든 삶은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 찢어지는 것 같은 이 마음의 전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C. 일꾼을 부르심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을 하나님이 보내주실 것이니, 너희는 주인에게 ‘청하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목자 잃은 양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는 영혼들을 당신의 사랑을 안 사람들을 통해서 구하신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놀라운 진보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깊은 소외를 경험하고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 인간의 자기 정체성까지 양보해야 할 정도로 기계는 발전하였지만 목자 잃은 양과 같은 그들의 상태는 점점 더 곤궁해졌다. 이처럼 진리가 없어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 수 없고, 진리를 알아도 그렇게 살 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 예수님의 마음으로 목자 잃은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영혼들을 위해 사는 성도들의 되길 바란다.
Ⅲ. 결론
우리가 무엇을 한들 완전한 만족을 누릴 수 있을까? 눈은 보아도 차지 않고 손은 가져도 끝이 없다. 그러니 우리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희어져 추수하게 된 세상을 보라. 여러분을 부르고 있다. 처음 사랑, 그 마음을 돌아가 잠시 사는 날 동안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