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부르짖고 묵상하라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 119:147-148)
I. 본문해설
고난받을 때 시인의 태도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부르짖는 기도와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그분과의 평화 속에 산다는 것이다. 그 평화 안에서 언제든지 그분의 뜻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하기로 뜻을 세웠다. 그렇다면 시인은 그러한 마음을 어떻게 유지하고 실천하며 살 수 있었을까?
II. 부르짖고 묵상하라
A. 부르짖고
시인의 갈망은 밝아오는 새벽과 함께 시작되었다.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시인의 마음을 보여준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했다.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랑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 갈망은 시인으로 하여금 깊이 잠들지 못하게 하였다.
당시 경건한 백성들에게 아침은 신비로운 시간이었다. 하루의 시작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날의 태어남을 알리는 시간이었다(시 30:5)
시인은 춥고 긴 밤 시간 동안 외롭게 밤새도록 성을 지킨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같이 하나님을 갈망하였다. 여기서 밤은 자연적인 밤뿐 아니라 또한 환경적인 밤중을 암시한다. 밤중은 절망과 고독을 상징한다. 또한 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 좋은 때다. 그러므로 환경적으로 깊은 밤중과 같은 상황을 지나는 때에 하나님을 갈망하라.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나아가길 바란다.
시인의 갈망은 부르짖는 기도로 나타났다. 하나님을 추구하기에 그분께 대한 의존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절실한 의존의 감정을 동반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을 의지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졌어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인의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의존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것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없다. 하나님은 당신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우리의 마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여기서 부르짖음은 단지 육체의 외침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외침이다. 그래서 신음을 동반한 침묵의 기도도 부르짖는 기도다.
B. 묵상하라
시인은 부르짖는 기도와 함께 말씀을 묵상했다. 원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의 두 눈은 야간 경비를 설 순서를 기다리는 것처럼 떠져 있었으니, 이는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깊은 밤, 파수꾼이 경비를 설 순서를 기다리는 것처럼 밤에도 눈을 붙이지 아니하였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을 찾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겠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또한, 시인에게 묵상은 하나님을 향한 사색의 시간이었다. 믿음이 없는 사색은 마치 항구에 닻을 내리지 못한 채 떠도는 배와 같다. 정착할 의도는 가지고 있으나 자기를 붙잡은 말씀이 없기에 방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 없이 사색하는 것도, 사색 없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온전한 경건이 아니다.
참된 사색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을 우리는 묵상이라고 부른다. 경건한 묵상과 철학적 사색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자기가 인식한 사실들을 하나님과 연결 지어서 삶을 해석하느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을 행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 주체적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실행한다. 이 과정의 반복이 그의 일생을 만들어간다. 묵상이 없는 말씀 생활은 우리의 신앙을 단지 이성에 머물게 한다. 그러면 신앙의 피상성을 벗어날 수 없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살과 뼈로 이루어진 몸을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살아있는 영혼’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마른 뼈와 같은 영혼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영혼 안에 충만한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 충만한 생명은 은혜를 통해서 부어진다. 시인은 그렇게 풍성한 생명을 기도의 부르짖음과 말씀의 묵상 속에서 누렸다. 그에게 묵상은 머리에 있는 지식을 가슴으로 내려가게 하는 깔때기였다. 묵상 없는 말씀의 습득은 마치 소화되지 않은 채 뱃속에 남아있는 음식과 같다. 그래서 경건한 시인들의 묵상은 애통하는 기도와 함께 거룩하신 하나님께 바쳐지는 훌륭한 제물이었다(시 19:14).
사랑은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제일 먼저 사고기능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충만한 사랑의 증거는 생각이 그것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달콤한 묵상은 그가 하나님과 연애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의 묵상 생활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III. 적용과 결론
시인은 부르짖는 기도와 말씀에 대한 묵상으로 고난의 계곡을 지날 수 있었다. 여러분도 시인과 같이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부르짖는 기도로 승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