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너의 자녀를 낙심케 말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
Ⅰ. 본문해설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기록한 책이다. 사도 바울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이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낙심케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부모의 어떤 점 때문에 낙심할까?
II. 너의 자녀를 낙심케 말라
A. 과도한 기대
아이에게 적합하지 않은 기대는 마음에 강요와 상처가 된다. 모든 부모는 공통된 착각이 있다. 자신의 아이는 남의 아이보다 특별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그 기대가 깨진다. 그러면서 실망과 갈등이 생긴다.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다르게 창조하셨다. 우리 모두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과도한 기대를 한다.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아이가 이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 좋은 대학 가는 것, 좋은 직장 취업하는 것 등을 위해 이런저런 공부를 가르친다.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부모들의 마음이 여기에 쏟아진다면, 자식을 향한 과도한 기대가 되는 것이다.
자녀가 참된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 마음을 쓰고 있는가? 자녀 영혼의 회심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가? 아이의 학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을 위해서 더 많이 눈물 흘리고 있는가? 무엇을 해서 벌어 먹고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인간의 삶이 있어야 직업도 재능도 의미가 있다.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다.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B. 지나친 징계
아이들이 잘못하면 야단을 치고, 잘하면 칭찬을 해서 옳고 그름에 대해 자각을 하게 해야 한다. 자녀 교육의 중요한 기능이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은 성경을 가지고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교육의 역할이다. 그러나 대부분 부모가 자녀를 징계할 때는 성질이 나서 야단을 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슴 아파서 징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징계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에 합당한 야단을 맞아야 한다. 아이의 영혼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염려 때문에 아이를 타일러야 한다. 징계를 많이 해서 아이가 바르게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부모와의 인격적인 관계가 깨지고 나면 아무 소용없다.
어리석은 부모들은 자식들을 강하게 키운다고 자기가 살아온 인생철학을 강요한다. 또는 자기 경험에 의존하여 경쟁에서 이기는 삶의 방식을 강요한다. 그러나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들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깨지고 나면 아무 소용 없다. 성인이 되어 아이들은 부모를 그리워하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인격적인 관계를 파괴하고 얻을 것은 없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돌이키기를 바란다.
C. 그릇된 모본
폭력 가정은 심각한 문제다. 아이들은 약자다. 부모가 폭력을 행사해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장하며 권력을 갖게 된다. 반면에 부모는 점점 권력이 없어진다. 그러면서 자녀는 부모를 떠난다. 폭력의 상처는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한다.
물리적인 폭력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만, 부모의 그릇된 모본도 상처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보고 배운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며 판단력이 생긴다. 부모의 앞뒤 모습을 다 보고 배운다. 앞에서 가르쳤던 것과 뒤에서 삶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일치하지 않을수록 자녀에게는 마음 깊은 상처가 된다. 특히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기독교 신앙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배우게 된다. 더 심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전도가 제일 힘든 사람이 믿는 가족에게 실망하여 교회를 끊었던 사람들이다.
부모로서 최고의 교육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삶으로 보여주는 부모가 되길 바란다.
D. 무관심과 방치
부모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상처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아이들의 세계의 전부다. 그렇기에 관심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부모들이 각기 자기 일에 바쁘다. 자식에 대해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다.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바빠도 관심이 가고, 만나는 것이 사랑이다. 무관심한 것은 사랑이 없는 것이다. 때로는 무관심은 미움보다도 더 심각한 잘못이다. 부모 관심 밖이어서 자녀가 마음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아이를 가시넝쿨을 헤쳐나오라는 것과 같다. 자녀의 인생이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을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 자녀의 일상과 고민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기를 바란다.
III. 적용과 결론
자녀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발견할 때까지 사랑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