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약속을 바라는 믿음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 50:24-25)
Ⅰ. 본문해설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가 된 후 가족들을 다시 만났다. 그때 그의 나이가 39세였다. 그리고 110세에 죽었으니 71년을 더 산 셈이다. 본문은 죽음을 앞둔 그의 마지막 말이다. 그는 애굽의 통치자로서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그의 소망은 애굽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형제들에게 다음 사실을 당부한다.
Ⅱ. 약속을 바라는 믿음
A. 떠날 것을 당부함
첫째로, 요셉은 애굽을 떠날 것을 당부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떠날 것을 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애굽 땅을 떠나게 하실 것을 기억하라는 당부였다. 그는 자기의 형제들과 자손들에게 애굽을 떠날 것을 말하면서 약속의 땅에 대해 언급한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창 50:24).
이 유언은 요셉이 파란만장한 생애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다. 바로 땅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 약속은 단순히 땅을 준다는 약속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함께하시는 특별한 나라를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그날을 소망하였다. 그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땅에 대한 약속은 신약시대에 성도들이 누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안식을 예표한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8-9). 그 땅에 이르기까지 나그네의 삶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얻음으로써 안식하였다. 그들처럼 신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기업으로 받고 그분을 누림으로써 영혼의 안식을 얻는다.
요셉은 이 세상에서 살았다. 그렇기에 그의 기도제목 대부분은 세상일에 대한 기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도제목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긴 해도 그것을 소망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의 본향은 이 세상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약속의 땅이 있다. 그러니 세상의 많은 것들을 위해 마음을 기울이지 마라. 우리의 소망은 거기에 있지 않다.
B. 자기 뼈를 위해 명함
둘째로, 요셉은 자기의 뼈를 가지고 떠날 것을 당부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요셉의 이 고백이 믿음이라고 말한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히 11:22).
요셉의 이 유언은 출애굽 때에 이루어졌다.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출 13:19). 출애굽은 요셉이 죽은 후 백 년 후에 일어났다. 그런데도 그는 그 일이 마치 당장 일어날 것처럼 유언했다. 이는 그가 종말론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 강하게 소망하였기에 바로 오늘 애굽을 떠날 것처럼 당부한 것이다.
이는 요셉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시간을 초월한 감정이다. 미래에 올 기쁨을 현재에 느끼게 하기도 하고,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아픔을 오늘 느끼게 하기도 한다.
요셉은 애굽에서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들이 헛됨을 알았다. 지혜는 이 세상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는 진리와 맞닿아 있는데, 진리는 영원한 것이기에 그 영원한 빛 아래서 순간적인 것을 볼 때 허무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셀라)”(시 39:5).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것은 영원한 것답게 대우하고, 순간적인 것은 순간적인 것답게 대우해야 한다. 그리고 헛된 것을 초월하여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Ⅲ. 적용과 결론
요셉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았다.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부귀영화를 누렸음에도 하나님과 함께 있을 영원한 나라를 그리워하였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짧고 덧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새롭게 하라. 우리 삶이 허무하지 않은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기 때문에 우리 삶은 가치가 있다.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