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내 영혼이 녹을 때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시 119:28)
Ⅰ. 본문해설
시인은 극심한 영적 침체에 빠진 경험을 고백한다. 그때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말하면서, 회복을 위해 간구한다. 본문 바로 앞에서 시인은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라고 고백하였다(시 119:27). 그것이 미천함과 절망감을 느끼는 영적 상태를 보여준다면, 본문은 비참함과 무력감을 느끼는 영적 상태를 보여준다. 본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영혼이 무거워 (방울 방울) 떨어지오니 당신의 말씀을 따라 나를 일으켜 주옵소서’
II. 내 영혼이 녹을 때
A. 눌림으로 녹음
“영혼”이라는 단어는 영혼의 실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인 마음과 정신세계까지 아우른다. 마음 안에서 자기 안에 있는 영혼과 자기 밖에 있는 세계가 만난다. 따라서 ‘영혼이 눌린다’는 표현은 ‘마음으로 그 눌림을 지각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눌림”이라고 표현된 원어의 원래 뜻은 ‘무거움’이다. 시인이 느낀 무거움의 정체는 크게 두 가지의 두려움이었다. 하나는 외적으로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내적으로 자신의 죄로 인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는 양심의 작용이다. 양심의 가책에 따른 두려움은 종종 마음의 중압감을 넘어 신체에까지 영향을 준다. 때로는 무거움을 넘어 창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함께 경험한다. 이는 양심이 사용하는 율법의 작용이다. 이때 느끼는 두려움은 다음과 같다. 의식 속에 있는 하나님의 법이 죄를 콕 찍어 지적한다. 변명할 수 없도록 막다른 골목으로 몬다. 그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무지 속에서 더 큰 두려움이 된다. 때로는 숨쉬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며 기절을 하기도 한다. 다시 평화를 누릴 가능성이 없을 것 같은 절망감도 느낀다. 그때 자신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 자체를 감당할 수 없을 무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영혼의 눌림을 더욱 크게 느꼈다. 하나님 사랑은 우리의 영혼을 가볍게 하고, 세상 사랑은 우리의 영혼을 무겁게 한다. 하나님 사랑 안에서 영혼이 얼마나 가벼운지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영혼의 눌림을 느낄 수 없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곤고한 자”라고 고백하였다(롬 7:24). 이것이 구원받았으나 죄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신자의 현실이다. 구원은 완전하고 안전하지만, 신자는 잔존하는 죄 때문에 불완전하다. 더욱이 불완전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런 갈등이 생긴다.
시인은 하나님과 신령하고 탁월한 교제를 누렸던 사람이다. 그는 시련이라는 외적 환경과 두려움이라는 내적 무게를 동시에 느꼈다. 그래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영혼의 무게는 마음이 자유를 상실했음을 뜻한다. 자유는 스스로 원하는 바를 선택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상태다. 그가 느낀 무거움은 정신의 억압이었고 마음의 강제력이었다. 거기에는 자유가 없다.
시인은 그릇된 사랑의 무게로 두려움의 속박을 받고 있었다. 시인은 이러한 마음의 무게로 자신의 영혼이 녹고 있다고 고백한다. ‘녹는다’의 원어의 원래 뜻은 ‘(액체 따위가) 떨어지다’이다. 이것은 절망적 상황 때문에 마음이 놀라서 기운이 뚝 떨어지고 지친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영혼의 상태를 살펴보라. 마음이 가벼운가?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무거운가? 그 무게로 마음이 방울방울 떨어지기까지 지쳐있는가? 아니면 절망하고 있는가?
B. 말씀으로 세움
시인은 비상한 두려움을 경험하였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마음이 눌리고 영혼이 녹는 것 같았다. 그때 시인은 자기가 의지할 분이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시인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시 119:28).
시인이 직면한 문제는 단지 자기가 처한 현실이 아니었다. 고민은 현실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시인의 내면세계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거기서 시인은 현실과 싸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영혼의 상태였다. 시인의 영혼은 그릇된 사랑의 무게로 인한 눌리고, 두려움으로 녹고 있었다. 그에 대한 해결책은 단지 원수가 멸망하고 교만한 자가 처단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영혼이 살아나야 했다.
“세우소서”는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뜻한다. 비유적으로는 약한 자를 강하게 한다는 의미다. 뜻을 잃은 자로 하여금 다시 뜻을 세우게 하시고, 마음이 무너져버린 자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고난에 처한 자들을 도우신다. 성령 충만할 때뿐만 아니라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도 도와주신다. 이러한 영혼의 회복은 “당신의 마음에 따라” 이루어진다. 주께서 언약하신 말씀을 따라서, 우리가 깨달은 말씀의 감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때때로 현실은 우리의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릇된 사랑의 무게로 상처받고, 믿음 없는 두려움으로 마음은 녹아내린다. 이때 해결책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 말씀으로 영혼이 다시 소생하는 것이다. 그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것이다.
III. 적용과 결론
말씀의 은혜를 받으라. 말씀을 깨달음으로 지혜를 얻으며, 죄를 뉘우침으로 다시 하나님 앞에 살아갈 용기를 얻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