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나이까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욥 13:20-28)
4-14장에 이르는 욥과 세 친구들의 첫 번째 대화 사이클에서 엘리바스와 빌닷, 소발은 한 번씩 말하였고 욥은 그들의 말에 각각 답을 하면서 세 번을 말하였다. 그들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서로를 향해 더욱 공격적인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특히 지난주에 살펴본 소발은 욥의 고난과 인격, 그의 삶까지도 모욕하며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처를 주었다.
욥의 마지막 답변을 기록한 12-14장은 형식상으로는 소발의 말에 대한 답변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세 친구들의 모든 말에 대한 답변이라 할 수 있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친구들에 대한 모욕과 조롱(12:1-13:19)
2. 하나님을 향한 탄원과 항변(13:20-14:22)
1. 세 친구를 향한 욥의 모욕과 조롱(12:1-13:19)
욥은 친구들의 모든 충고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라고 무시한다.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라고 비아냥거리며 그들의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식상한 지혜라는 것이다.
1) 욥과 친구들 사이에서 불공평한 하나님
욥은 친구들에게 받은 모욕을 되돌려주고 다시 자신의 현실을 한탄한다.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욥 12:4-6).
욥은 의롭고 온전한 자신은 웃음거리가 되고 고난당한 친구에게 저주와 모욕의 말을 쏟아내는 강도와 같은 친구들이 형통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불공평하게 다스리기 때문이라고 불평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불공평하게 통치하신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 바다의 고기도 아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욥 12:7-9).
2) 자연과 인간 역사 가운데 불공평한 하나님
욥은 하나님이 피조 세계에서도 불공평하게 일하신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12장 13-25절을 통해 파괴자 하나님을 제시한다. 욥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는 방법이 세상의 질서를 파괴함으로 세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먼저 사람과 자연을 파괴하는 모습을 말한다.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아주지 못하느니라 그가 물을 막으신즉 곧 마르고 물을 보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욥 12:14-15).
자연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 사회와 역사 속에서도 파괴자로 나타난다. “모사를 벌거벗겨 끌어 가시며 재판장을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왕들이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 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충성된 사람들의 말을 물리치시며 늙은 자들의 판단을 빼앗으시며 귀인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욥 12:17-21).
욥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모습을 인류의 역사를 마음대로 운영하시는 폭군에 비유한다.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민족들을 널리 퍼지게도 하시고 다시 끌려가게도 하시며 만민의 우두머리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시며 빛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 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욥 12:23-25).
그가 이렇게 하나님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파괴와 폭정에 의해 당하는 억울한 일임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3) 쓸모 없는 의원 같은 친구들
하나님의 불공평함과 자신의 억울함을 장황하게 설명한 욥은 이제 친구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욥 13:4-6).
욥이 친구들을 향해 쓸모없는 의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하는 말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쓸모없는 의원들이 하는 것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인데 이 표현은 ‘가짜 약으로 문지르는 것’이라는 의미다. 상처가 난 곳에 약을 바르지만 사실 그 약은 가짜 약으로 치료하는 돌팔이 의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용히 있으라는 것이다.
친구들을 향한 욥의 말은 더욱 독해진다. 친구들이 지키려는 하나님의 공의는 곧 속임이고(욥 13:7), 거짓이기에 그것은 쉽게 무너지는 흙으로 지은 성과 같다고 조롱한다(욥 13:12). 그들의 모든 말이 재와 같이 흔적 없이 날아갈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4)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원함
이렇게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한 욥은 이제 하나님께 직접 자신의 상황을 말하고 싶다고 외친다.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욥 13: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욥 13:13).
욥의 이러한 마음은 자신의 남은 목숨까지도 내어놓고 하나님과 변론하고자 하는 결단으로 이어진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욥 13:15-16).
2. 하나님을 향한 탄원과 항변(13:20-14:22)
욥은 이제 하나님을 향해 탄원의 말을 시작한다.
1) 욥이 구하는 두 가지 일
욥은 하나님을 향한 탄원을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이 자신을 향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말기를 청한다.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욥 13:20-21).
곧 육신에 하나님의 손이 닿아서 육체적 고난을 겪는 것과 그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공포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현재 욥이 당하는 고난이었다. 욥은 하나님의 손이 그의 삶을 쳐서 모든 것을 상실하고 고통당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으로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었다. 이것이 욥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욥은 자신이 왜 이렇게 고난당해야 하는지를 궁금해한다.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 13:22-23).
사실 지금 욥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가 모든 소유를 잃고 마음이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었다.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위로하지 않으시고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간절히 구한다.
2) 하나님의 침묵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셨다. 그것이 욥이 고통 가운데 있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욥 13:24).
고난 중 성도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다. 욥은 세 가지 비유를 들어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외면하고 계신지를 말한다.
먼저,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찾아 벌하려는 추격자와 같다고 한탄한다.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욥 13:25).
다음으로,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죄를 기록하여 추징하는 서기관 같다고 말한다.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욥 13:26).
마지막으로,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감옥의 간수를 감시하는 분으로 여겨졌다.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욥 13:27).
고난 중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욥에게 추적자요, 서기관이요, 간수와 같았다. 욥은 이제 하나님의 임재 없이 고난 당하는 자신이 썩어 없어지는 물건과 같고 좀이 먹어 파괴된 옷과 같다고 한탄한다.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욥 13:28).
그리고 자신이 왜 그렇게 친구들과 하나님께 독설을 쏟아 냈는지 고백하는 구절이 나온다.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욥 13:24).
욥이 자신의 삶을 썩은 물건과 같고 좀 먹은 옷과 같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침묵하시는 하나님 때문이었다. 고난 중에 자신을 위로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께 진짜 버려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세상도, 하나님도 모두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맺음말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 만나기를 간절히 구한다. 하나님과의 만남만 있다면 어떠한 고난이라고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도가 고난당할 때 침묵하신다. 그것은 우리를 외면하셨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신뢰하시고 계시다는 증거다. 우리가 주저앉을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번쩍 일으켜 세우신다면 우리는 항상 주저앉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도 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침묵하시며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우리의 믿음으로 보이자. 그러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귀한 주님의 백성들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