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고난을 피하지 않는 신앙
I. 본문해설
오늘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장면으로 오늘날로 치면 아홉 시경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만찬을 하며 떡을 떼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가다, 밤늦게 군병들에게 잡혀서 빌라도에게로 끌러가셨다. 때마침 헤롯이 그 지방에 와 있는 터라, 그 앞에 가셨다가 다시 빌라도에게 오셨고 모든 재판이 끝나고 금요일 아침쯤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여섯 시간 동안 못 박혀 계셨다. 본문 말씀을 외치던 시간이 여섯 시간 중에 언제쯤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여섯 시간의 후반부일 것이라 추정된다. 십자가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방식이었다. 사람을 가로 막대기에 얹어놓고, 손에 못 박은 다음 세로 막대기를 땅에 꽂아 높이 달아 올리는 사형집행법으로써, 이 사형의 잔인성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피가 계속 흐르고 견디기 힘든 두통 때문에, 기절했다가 깨는 것을 반복하며 최후의 순간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최대로 고통을 당하는 형벌이었다. 그래서 로마사람들은 이 십자가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었고, 가장 극악한 죄인이 아닌 경우에는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생애는 주린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고치고, 하늘 복음을 전하신 섬김의 일생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힐 만한 나쁜 일을 저지fms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대속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해셨다. 자나 깨나 영혼들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던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이, 영혼들을 돌보던 손에는 굵은 대못이, 영혼들을 두루 찾아 두루 다시니던 발에도 역시 굵은 대못이 박혔다. 가장 흉악한 죄인이나 당하는 형벌을 순결하시고 순전하신 우리 주님께서 당하고 계신 것이다. 십자가형의 와중에 죄인들의 극심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일종의 마취제와 같은 쓸개를 탄 독주를 스폰지 같은 것에 묻혀서 죄인의 입에 대어 주어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하여 주는 것이 상례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신 가상칠언은 모두 불쌍한 죄인이나 하나님께 드리던 탄원의 기도였는데, 이 한마디 말씀만큼은 자신이 당하신 고통을 피력하신 개인적인 말씀이었다.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참 사람이었고 흠 없는 어린양이셨다. 그분은 참 인간으로써 택자를 위한 고통을 대신 담당하셨다. 또한 죄 없으신 참 신으로써 형벌당하는 것은 무한한 고통이었다.
II.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
무엇 때문에 생명이신 그분이 죽음에 삼킨바 되어야 했고, 천지 만물의 창조주께서 물 한 모금이 없어서 목마르셔야 했으며 무엇 때문에 그분이 죄인이나 당하는 형벌을 받아야 했는가?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그분은 죽으시고 우리같이 비천한 죄인이 생명을 얻은 것은 대속의 놀라운 지혜였다. 그분은 한 번도 아버지와 떨어져 본 적 없는 분으로 아버지와의 단절의 고통을 겪으셨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외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더러운 죄인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대신 죽음을 당하셨다. 우리가 이전에 받은 놀라운 구원, 오늘처럼 빚어져가는 성화, 우리가 누리는 좋은 모든 것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졌고, 우리 같은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대속 사역 덕분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대목은 바로 이것인데, 우리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고통을 당하실 때, 쓸개 탄 포도주를 얼마간 받아 마셨다면 십자가상에서의 고통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예수님은 이를 마시지 않으셨다. 한 모금의 독주를 마신다고 그분의 사역의 영광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주님께서는 마취제 같은 독주를 거절하고 모든 고통을 온전히 담당하셨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아버지의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죄인을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견디기 힘든 고통가운데서도 미래의 많은 열매들을 바라보며 견디셨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잉태하는 산모의 고통을 겪으시며 당신의 몫으로 태인 십자가의 고통을 뼈 속 깊이 맛보심으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셨다.
III.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께만 십자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따라 살려 하는 우리 모두에게 십자가가 있다.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우리에게도 십자가가 있다. 누구인들 그 십자가가 없을까? 그래서 십자가만 생각하면 우리는 겸손해지고 그 십자가를 생각하면 주님께로 갈 마음으로 가득하게 된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려할 때, 이 고통을 모면하기 위한 한 모금의 포도주와 같은 유혹이 사방에서 몰려온다. 물론 쓸개 탄 포도주 같은 유혹에 넘어가면, 고통을 이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감히 십자가가 즐거운 것이라고 하는가? 살아 있는 모든 자에게 그 고통은 참기 버거운 것이다. 순례자가 그 길을 다 간 연후에 그 길에 즐거웠노라고 회고적으로 말할 수는 있으나, 현재 그 길에 서 있는 것은 뼈아픈 고통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 고통을 피하려 하기보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요. 고난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고난을 통해서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고난을 통해서 신자들을 비옥한 교회의 토양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라고 요나단 에드워즈는 말하였다. 그분이 마지막까지 그 고난을 온전히 담당하신 것은 그분의 뒤를 따르는 무리의 모본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인내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감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기나 한 자들인가? 매일 매일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상을 목 메이게 바라며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인가? 하나님께서는 조금 사랑하시는 자들에게는 돈을 주시고, 많이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고난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평탄한 길을 가면서 예수님을 잊게 하시지 않고, 고난의 길을 가면서 예수님을 더 많이 생각하게 하신다. 그래서 치열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늘 소망을 가진 자들은 이 세상 표상에 속지 않는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의 두 눈에 눈물을 주어 그 눈을 깨끗이 닦으사, 이 세상 사랑을 벗겨내시고 정결한 눈으로 하늘나라를 사모하게 하신다. 주님께서는 고난 때문에 당신의 자녀가 주님을 애타게 찾게 하시고, 그들의 영혼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신다. 이 세상에 가장 복된 자는 하나님께 입을 열어서 구할 때, 그 소원의 만족함을 얻은 자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 이런 복을 주시는가?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와 통회하는 자를 가까이 하시느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고통을 주신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IV. 결론과 적용
주님께서 견디기 힘든 고난을 당하실 때, 고난의 잔과 더불어 쓸개 탄 독주의 잔을 함께 받지 않으셨다. 그것이 주님께서 고난을 대하는 태도였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하면 거기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이 있다. 이를 피하려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면 거기에는 고생이 있다. 사명을 피하면서 고생을 당하던지, 사명을 이루면서 고난을 택하던지 해야 한다.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면 사람에게는 안보여도 주님께는 보이는 우리의 인생의 발자취가 목도하게 될 것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이 세상 고통은 끝나고 주님 품에 안길 날이 온다. 우리 주님도 그 길을 걸어가셨다. 고난을 당할 때, 피하려고 하지 말라. 고난을 피하려고 하면 죄를 범하거나 불순종하게 되므로 도리어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께서 고통당하려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나도 고통당하려 여기 왔어요. 진흙과 같은 나를 빚으사 밀알처럼 썩어지게 하옵소서. 저는 아무래도 좋아요.” 그것이 십자가의 정신이다. 맨 정신으로 십자가를 지라. 그때 주님께서 예수님의 생명을 부어 주시며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드러내게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개인적인 삶에 얽매여서 그것만 해결하려고 혈안이지만,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삶 전체를 통전적으로 보고 계세요. 먼저 십자가를 잡으세요. 먼저 나의 것 구하지 말고 주님의 것 구하세요. 우리가 어디에서 잘못되고 어디에서 미끌어졌나요? 주님께서 맨 처음 주신 십자가의 자리가 어디인가요? 인생길을 쉽게, 쉽게 걸어가려 하지 마세요. 주님이 주신 십자가의 길이 가장 지름길이고 가장 좋은 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