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LLIN SERMONS

설교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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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늘 염려하지 말라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작성일 : 2019.11.10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Ⅰ. 본문해설
육신을 위한 염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실함에서 온다. 그래서 염려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여 인생의 목표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그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실 것을 믿으며 염려에서 벗어나게 된다.
염려에 관한 유장한 가르침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마무리하신다.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내일”은 미래에 속하는 모든 날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Ⅱ. 오늘 염려하지 말라
A. 내일을 위한 염려
먼저,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본문에서 염려의 주체가 “내일”로 등장한다. ‘염려’라는 것은 인간과 같은 불완전한 인격체가 할 수 있는 정신작용이다. 그래서 내일은 결코 염려의 주어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염려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자기 인생에 대한 욕망이 있는 한 염려가 없을 수 없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있기 마련이고, 그 둘 사이의 차이만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음의 이유 때문에 염려는 불합리하다.
첫째로, 내일 일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염려는 대부분 상상으로 시작되기에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염려한다. 그 상상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염려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둘째로, 염려가 실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염려하는 것은 욕망은 있으나 그것을 이룰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니 염려한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더욱이 염려는 우리의 육신을 상하게 하고 마음까지 병들게 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염려는 불안을 가져오고, 그 불안은 좌절의 경험으로 연결된다. 또한 불안은 두려움을 핵심감정으로 남겨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 가운데 살게 하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셋째로, 염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염려는 어떤 문제에 집중하게 한다. 그런데 문제에 집중하면 할수록 문제 해결의 길은 요연할 경우가 많다. 또한 염려는 이 세상의 것들에 집중케 하여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와 씨름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
넷째로, 염려가 기쁨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은 선적 행복과 점적 행복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선적 행복은 오늘을 희생하고 얻을 가치가 있는 미래의 행복을 말하고 점적 행복은 인생의 매 순간 누리는 행복을 말한다.
성경은 인생이 헛되다고 가르치면서도(전 2:11), 그날을 즐겁게 살라고 한다(전 9:9). 거룩한 천상의 기쁨으로부터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격려한다. 그러나 염려는 이런 즐거움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염려로 물들이지 말고 하나님 앞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고 기뻐하며 살기를 바란다.

B. 그날로 족한 괴로움
다음으로, 그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첫째로, 인생에 괴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괴로움”이라는 단어는 ‘악’, ‘나쁨’, ‘재난’, ‘고통’을 의미한다. 이는 선(善)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나쁜 것’, ‘행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행복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하신다. 우리 인생에는 선과 악, 즐거움과 괴로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섞여 있다. 인생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난다. 좋은 것은 하나님 때문에 온 것이고, 나쁜 것은 세상과 나의 불완전함 때문에 온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인생의 주체가 되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둘째로, 괴로움은 그날에 한정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족하다’라는 말은 ‘충분하다’, ‘넉넉하다’의 의미이다. 우리에게 괴로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오늘의 괴로움 때문에 내일을 비관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괴로우나 하나님을 사랑을 붙든다면 살아갈 만하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붙드는 자에게 은혜의 세계를 보여주시고, 찬란한 지식의 빛을 내려주신다. 그러므로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Ⅲ. 적용과 결론
예수님의 생애는 분투하는 일생이었다. 그분은 울기도 하셨다(히 5:7). 그것은 당신의 육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의 것들을 위해 늘 염려하고 두려워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삶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으라. 들풀조차 돌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쁨 속에서 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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