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LLIN SERMONS

설교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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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너희 자신을 알라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작성일 : 2019.09.22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6-27)

Ⅰ. 본문해설
염려하는 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누구인지 알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 돌보시니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알라는 것이다.

Ⅱ. 너희 자신을 알라
본문은 “공중의 새를 보라”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여기에서 “보라”는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가지고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깨달은 바를 삶에 적용해 보라는 것이다. 공중의 새를 볼 때 신자는 다음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A. 천부께서 돌보심
첫째로, 하나님께서 새들을 돌보신다는 것이다. 공중을 나는 새는 충만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간은 농사를 짓고, 작물을 거둠으로써 양식을 얻는다. 그리고 남은 곡식을 창고에 모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보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우리가 사용할 뿐이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돌보심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곡식을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 새들까지 기르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지으신 창조적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친자녀 삼아 우리의 양자적 아버지가 되셨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돌보심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본문에서 “너희”는 지상에 있는 우리를,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둘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완전할 뿐 아니라 독생자를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시다. 하늘의 새 한 마리도 돌보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어찌 당신의 자녀들을 더 잘 돌보지 않겠는가?
신앙의 깊이는 하나님을 얼마나 아버지로 여기고 있느냐로 드러난다. 은혜 가운데 있다는 말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깝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땅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가까이 하나님을 느끼는 것이 바로 신앙의 깊이인 것이다.

B. 귀하게 여기심
들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새들보다 귀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 8:4-5). 이 구절은 사람에 대한 서술로 생각되나 히브리서는 이 구절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와 연결한다.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히 2:6-7).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심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보여주셨다. 또한 인간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참새를 통해 알리신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존귀하다. 그러나 신자는 더 소중하다. 신자는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를 대속하셨다. 그분은 영광 가운데 부활하여 우리를 당신 안으로 부르셨고, 하나님의 아들된 당신의 영광에 참여케 하셨다. 그러니 신자는 더 귀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버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사라진 데서 오는 고립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 없지만 은혜의 상태에 따라 사랑의 크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쓸모 있는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곧 인간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음으로 자존감을 회복한다. 그 자존감은 하나님께서 나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확신이고, 매순간 그분이 나를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다. 염려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를 돌보신다. 성령 충만할 때뿐만 아니라 은혜에서 멀어져 있을 때도 그러하다.
염려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마 6:27). 만약 염려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대신 자기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라. 우리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음을 기억하고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의 돌보심을 믿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시 31:15).

Ⅲ. 적용과 결론
모든 염려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데서 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그분의 자녀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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