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I. 본문해설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쓴 편지다.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도시 속에 세워진 교회였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 제국 중 손꼽힐 정도로 발전한 도시였다. 물질문명은 번성했지만, 영적·정신적으로는 그렇게 번영하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떤 가정을 이루어야지만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과 같이 될 수 있는지를 오늘 이 교훈을 통해 보여준다.
II. 자녀를 어떻게 양육할까? A. 노엽게 하지 말라 첫째로, 노엽게 하지 말라. 여기서 ‘노엽다’는 뜻은 어른들이 노여워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마음에 노여움을 품어서 살아갈 의욕이 상실되는 상태를 뜻한다. 또한 “아비들아”라고 말함은 아버지가 자녀를 노엽게 할 가능성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부모 모두 아이를 노엽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부모에게 해당된다. 아이들은 어리고 힘이 없어 노여움을 표현하지 못한다. 노여움이 마음속에 계속 쌓일 때 일그러진 자아상을 갖게 된다.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째로는, 부모의 그릇된 욕망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향해서 과도한 욕망을 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공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 얼마나 냉혹한지를 경험한 부모들이 아이에게 공부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부모가 교육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두 경쟁에서 이기는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결국 각자 능력에 맞게 자기 인생을 살아간다. 부모는 아이들이 무엇이 되든지 간에 한 사람으로서 성숙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한 삶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과도한 징계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야단을 쳐서 잘못을 교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성을 잃고 홧김에 혼내지 말아야 한다. 잠언에서는 때리지 않으면 아이를 망친다고 한다. 그런데 성경의 강조점은 아이에게 매를 드는 이유는 마음의 매를 맞게 하기 위해서다. 폭력이 아닌 아이의 마음이 아프도록 감동을 주는 것이 진정한 징계이다. 셋째로는, 무관심이다. 이것이 가장 나쁜 것이다. 같은 집에 살아도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부모들도 많다. 함께 살아도 버림받은 아이들과 같다. 아이들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연합을 이루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아이들에게 상처와 노여움이 된다. 결국 일그러진 자아상으로 자신의 미래와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교회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적 환경의 영향은 매우 크다. 자녀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인격적인 사랑을 나누지 못할 때 내 자녀는 태어날 자신의 자녀와 그 관계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녀를 맡기진 계획과 너무 어긋나는 것이다.
B.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둘째로,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직”이라는 것은 ‘그러나’라는 뜻이다. ‘노엽게 하지 말아라.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모로 부르신 이유는 자녀를 육체적으로는 영양을 공급하며 따뜻하게 돌보고, 한 인간으로서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정신적인 양분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부모의 가장 큰 사명은 참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때 아름다운 삶이고,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인지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부모의 가르침은 그 가르침에 자신의 온 인생을 걸고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칠 때 훈계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삶으로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주어지는 것이다.
III. 적용과 결론 이제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이의 모든 것을 용납하며 사랑하며 살 수 있는 부모가 되라. 그러면 여러분이 늙고 병들어도 자녀들은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가족으로 마음을 이어가며 살아갈 것이다. 거기에 인생의 행복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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