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맛보는 묵상

  • 오늘의 말씀 : 2017년 08월 18일
  • 제목 :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를 묵상하며


수백 년 전의 그리스도인들과 며칠을 함께 지내는 것은 얼마나 신선하고 자유롭고 활기찬 체험인지 모른다. 베들레헴 교회 목회자 회의를 준비하면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와 선교 일지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는 뉴욕, 펜실베니아, 뉴저지에 사는 인디언들에게 파송된 선교사였다. 나는 며칠 동안 브레이너드가 살았던 1718-1747년의 과거로 돌아갔다. 그는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너무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지금도 증거하고 있다.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죽었고, 어머니는 열네 살 때 사생활 내내 각혈과 발작으로 고통을 겪었다. 치료 방법도 없었고 하나님께서도 그를 고쳐주시지도 않았다.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증세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면 그때는 날아갈 것 같았다.
“ 1746년 5월 6일 화요일. 일하면서 생기와 용기를 얻었다. 우울증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죽음과 같은 증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는 교수에게 앉아 있는 의자 값도 못한다고 욕을 해서 졸업을 1년 앞두고 대학에서는 퇴학 당했다. 당시에는 학생이 교수를 욕하면 퇴교 사유가 인정되었다.

정상적으로는 목회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선교사로 진로를 바꾼 그는 결과적으로 기독교 선교 역사를 바꿔 놓았다. 그는 미혼이었고 광야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1743년 5월 18일 수요일. 내 가슴을 털어놓고 영적 고민을 얘기하고 신령한 일들에 대해 충고해주고 함께 기도할 인생의 동반자가 없다.”
“1744년 5월 8일 화요일. 사역을 생각하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만 같다. 광야에서 홀로 방황하다보니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 광야 생활은 힘들다.
“ 나는 주로 삶은 옥수수, 푸딩 같은 것을 먹고 산다. 잠은 짚더미 위에서 잔다. 사역은 고달프다. 어디를 보나 성공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많이 돌아다니지만 성과는 없다. 그래도 뼈가 부스러지지 않아 감사하다. 광야에서 춥고 배고플 때가 많고, 숲속에서 길을 잃을 때도 많지만, 나를 보존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성결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내가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사모하고, 성결을 찾고, 내 영혼 속에 하나님을 모시는 이 기쁜 고통이 더욱 하나님을 사모하게 한다. 하늘나라를 앞두고 잠시라도 늑장을 부리지 말아야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어떤 면이 그토록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만큼은 도저히 말릴 수 없는 외롭고 우울한 고통 받는 한 젊은이를 택하셔서 수백 명의 인디언들을 구원하고, 프린스턴 대학과 다트머스 대학 설립의 길을 여셨다.

철저하게 헌신적인 그의 4년 간의 인디안 선교 활동을 통해 향후 200년 간 타오를 세계 선교의 불을 지피셨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인도에서 브레이너드와 같은 삶을 살았고, 헨리 마틴(Henry Martyn)은 페르시아에서, 로버트 맥체인(Robert M’Cheyne)은 스코틀랜드에서, 데이비드 리빙스톤(David Livigstone)은 아프리카에서, 짐 엘리엇(Jim Elliot)은 에콰도르에서 선교사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가 대학에서 퇴학당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육신의 감각으로 주님을 판단하지 말고 그의 은혜로 그분을 믿으라. 주님의 섭리가 고생스러워보여도 끝에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나니. ─ 윌리엄 쿠퍼(William Coo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