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맛보는 묵상

  • 오늘의 말씀 : 2017년 03월 27일
  • 제목 : 데살로니가후서 3장 6-15절에서 자비와 정의에 대해 묵상하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

권리를 포기함과 동시에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함을 통해 바울은 두 가지 형태의 사랑의 모델을 제시했다. 8-9절에서 그는 교회로부터 목회 사역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받을 권리를 포기했다.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여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설교에 대한 사례비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 그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여 다른 목표를 이루었다. 바로 세속적 직업에 충실하여 자족하는 본을 교회에 보여준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10절에서는 의무를 다하라고 요청한다. 임금을 얻기 위해 일을 할 의무를 요구한 것이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권리를 포기하고, 의무를 요구하는 이 두 가지 모두 사랑의 다른 모습이다.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사랑인 것은, 바울이 자기 권리를 희생시켜 좀 더 생산적인 삶의 본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권리를 요구한 것이 사랑인 것은, 그것이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4-15절에서는 이에 대해 명백히 해두고 있다.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 이 질책의 목적은 이간질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변화를 촉구하는 모진 사랑을 통해 잘못된 행동으로부터 회복시키는 데 있다. 달리 말하자면 바울은 자비와 정의의 본을 보이고 있다.

자비 : 자기 양식을 위해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함을 통해, 그는 요구받았던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그리고 마땅히 받을 수 있는 권리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정의 : 다른 이들에게도 일할 것을 요청함을 통해, 그는 그들이 교회에 자비를 요청하지 못하게 금했다. 그들이 자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떠한 사랑을 실천해야 할까? 자비로 사랑해야 할 때는 언제이며, 정의로 사랑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 세 가지 지침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당신의 성격을 잘 파악하여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하라.

당신이 천성적으로 동정심이 강하다면, 정의를 내세우는 사랑을 배우려 노력하라. 이와는 반대로 매사에 공정한 성격이라면 자비를 베푸는 사랑을 배우려 노력하라.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성격대로만 행동하기 쉽다.

다소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라면 포기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편이 낫다. 그와는 반대로 공동체 전체적인 문제라면 요구하는 사랑으로 다가가는 편이 낫다. 왜냐하면 공적인 상황에서는 요구하는 사랑이 당사자뿐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까지 고려하는 방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적인 관계에서는 무엇보다 소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해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자비로 사랑하든, 정의로 사랑하든 간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더 많이 누리도록 돕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