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맛보는 묵상

  • 오늘의 말씀 : 2017년 07월 21일
  • 제목 : 영원한 모험과 일시적인 모험


영원한 모험을 없애신 그리스도는 백성들에게 일시적인 모험으로 가득 찬 삶으로 부르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최후의 모험은 지나갔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사망이나 생명이나 …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으나 …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눅 21:16, 18).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죽음이라는 위협이 우리에게 천국을 향한 문이라면, 더 이상 무엇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겠는가. 그리스도인이 진심으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에겐 사랑하지 못할 그 무엇도 없다. 과격 이슬람 단체에서도 비슷한 꿈을 제시하며 순교적 살인을 부추길 수 있겠지만, 기독교의 소망은 죽일 힘이 아닌, 사랑할 힘이다. 기독교의 소망은 생명을 취하는 자들이 아닌 생명을 주는 자들을 탄생시킨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백성들에게 불러 원수들을 위해 살고 죽게 하신다. 그분 자신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가 허락한 유일한 모험은 사랑이라는 모험이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영원한 기쁨에 대한 약속과 함께, 예수님은 모험으로 가득한 삶을 제시하셨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눅 21:16). 우리 중에 몇 일 뿐이다. 당신이 포함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험이 의미하는 바가 이것이다. 머리에 총을 쏘는 것은 모험이 아니다. 결과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전쟁 지역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모험이다. 총을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미국 소비자 중심주의에서는 대개 그 반대의 메시지를 제시한다. 편안함과 안전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그리스도는 이에 동의하지 않으신다. 위험한 모험을 앞두고 주저하는, 소심한 제자들을 향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눅 12:4). 그렇다. 최선을 다해 기뻐하라! 사랑을 위해 기꺼이 비난을 당하고 박해를 박으라. 하늘에서 그런 자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마 11:12).

성경에는 사랑으로 위험을 무릅쓴 위대한 인물들이 소개된다.

요압은 한 편으로는 시리아 군대, 다른 한 편으로는 암몬 군대와 맞서면서 형제 아비새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삼하 10:12).

에스더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왕실 법도를 어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사드락과 친구들은 왕의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그리고 성령을 통해 앞으로 갈 모든 성에서 결박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듣게 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스티븐 닐은 초대 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초대 교인들은 자신이 언젠가 목숨을 걸고 믿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독교 선교 역사[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수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목숨을 잃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요, 목숨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곧 자신의 영혼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대가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악한 세대 가운데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 되고 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 역시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았던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감당해야 할 모든 모험을 없애셨다. 그리고 이 땅에 온갖 사랑의 모험을 펼쳐 놓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