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맛보는 묵상

  • 오늘의 말씀 : 2017년 04월 26일
  • 제목 : 새 언약을 훼손시키려는 주장을 경계하라


하나님은 인간의 취사선택을 미리 아실 수 없다는 그릇된 주장이 가끔 나오곤 한다. 그런 사람들은, 취사선택은 자유이고 자유는 스스로 하는 것이기에 인간이 취사선택을 하기 전에는 하나님도 미리 아실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이 취사선택을 하기 전에는 취사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기에 하나님께서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실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철학적 전제 조건도 많다.
첫째, 자유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취사선택은 자유다.
셋째,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도 인간이 취사선택하지 않은 것은 아실 수 없다 등. 철학에서 시작된 이 주장은 성경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이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이 최근에 논리학이 요구하고 성경도 용납하는 학문적 움직임에 대해 쓰기도 했다.

여기서 순서를 주목해보자. 논리학이 요구하고 성경도 용납하는 순서다. 그러나 논리학이 요구하면 성경이 따라가 추인하는 것은 잘못된 순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취사선택을 미리 아실 수 없다는 주장은 기독교 정통 교리에 맞지 않는다.

칼빈주의자들이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취사선택을 완전히 그리고 확실하게 미리 아신다고 주장해왔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이렇게 썼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아신다. 왜냐하면 그분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이다.”또한 자코부스 아르미너스(Jacobus Arminious)는 이렇게 썼다. 만세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어떤 개인은 믿고 어떤 성도는 인내해야 하는지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택을 미리 아실 수 없다는 주장은 기독교 정통 교리에 맞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새 언약의 기초를 부정하고 있다.

이 새 언약은 모세, 예레미야, 에스겔이 예언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을 치르고 제정됐다(눅 22:20). 사도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이었다(고후3:6). 이 새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언약의 백성들이 믿음과 순종에 대한 계약 조건들을 이행하도록 돌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주신 옛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셨고(출 34:6-7) 믿음에서 우러나온 순종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변화 받는 은혜는 몇 사람에게만 주셨고 대다수의 백성들에게는 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 29:4).

대신 새 언약에 의해 다음과 같은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11:19-20, 36:27).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1:33).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다시 말하면 새 언약은 우리 소망의 기초다. 비록 우리는 연약하여 죄를 짓기는 하지만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인내하여 마침내 구원받게 될 것이다.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 있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우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것을 믿을 수 있다(유다서 24절).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이 어떤 취사선택을 할지 미리 알지 못하신다면 새 언약에 명시된 소망은 어떻게 되는가? 언약의 기본 틀은 망가지고 기초는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성결을 지킬 수 있도록 역사하겠다고 새 언약을 통해 약속 해주셨다. 즉 성도들이 성결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마음먹고 행하도록 우리 속에 역사하시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염원하고 실천하게 하겠다는 뜻이다(빌 2:13, 히 13:21).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이 무엇을 선택할지 미리 아실 수 없다면 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약속이 이루어져야만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대가로 이 약속이 이루어지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새 언약의 약속을 훼손하려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훼손하는 주장이요, 성령님의 활동을 약화시키려는 주장이다. 주님, 이런 잘못된 주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고 새 언약 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생활하도록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