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맛보는 묵상

  • 오늘의 말씀 : 2018년 01월 19일
  • 제목 : 예배에 대한 묵상


예배란 마음과 성품과 몸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높이 증거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7).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을 증거 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단지 주일 예배를 예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성경적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 1절에서“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했듯이 우리 인생 전부가 예배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인생을 살기 때문에 육신으로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예배의 의미를 더 조명해보자.
아침 식사나 피자나 다른 간식을 예로 들어보자.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한다. 먹고 마시는 것은 인생의 기본이다. 이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문제는 없다. 우리는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차 안에서든 공원에서든 매일 먹고 마신다. 사도 바울은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먹고 마시는 일과 관련해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이 증거 되어야 한다. 우리는 금식을 통해 음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증거할 수 있다. 음식을 덜 먹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행위를 통해 음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증거할 수 있다. 진수성찬을 먹을 때도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아는 사람으로서 감사하게 받아 먹으면 음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증거할 수 있다(딤전 4:3).

다음, 섹스를 예로 들어보자. 바울은 간음하지 않는 것이 예배드리는 것과 같다고 가르친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8-20). 육신을 간음하는 데 쓰지 말고 예배드리는 데 사용하라. 육신은 성전이요, 예배드리는 장소다. 육신은 창녀를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다. 섹스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섹스는 정말 소중하기 때문에 값싸게 사고팔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섹스를 결혼이라는 매우 안전하고 신성한 그릇에 간수하라고 말씀하신다. 부부의 사랑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사랑으로 비유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 하시는가 예시하기도 한다. 육신의 성결을 지키는 행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예배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예로 들어보자. 죽음은 육신의 마지막 행위다. 그런데 어떻게 죽어야 예배가 될까? 요한복음 21장 1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어떻게 죽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 암시하셨다. 육신은 마지막으로 영혼과 작별을 고한다. 이때 육신은 죽음을 통해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증거 해야 한다. 마지막 행위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빌립보서 1장 20-21절을 보라.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의 육신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시기를 바랐다. 그리고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여기고 죽을 때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증거할 수 있다. 죽음이 왜 유익한가? 죽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낫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다. 그러나 그 육신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는 말씀을 기억하라. 우리는 항상 성전 안에서 살고 있으므로 항상 예배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