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맛보는 묵상

  • 오늘의 말씀 : 2017년 01월 23일
  • 제목 :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고전 15 : 10)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는 것은 강림절 시를 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큰 은혜를 받으면 열심히 일하게 된다. 강림절 시란 무엇인가? 내가 섬기는 베들레헴 교회에는 관례가 하나 있다. 1982년 크리스마스 때부터 나는 네 편의 시를 써서 크리스마스 전 4주 동안 매 주일 예배 때 시 한 편씩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교인들에게 읽어주고 있다. 시는 주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시를 쓰는 데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주일 아침 설교 시간에 시를 읽을 때는 영적인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시를 쓰는 작업은 고단한 일이다. 그렇다고 신비한 계시를 받아 쉽게 써지는 것도 아니다. 참신하고 자연스러운 시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몇 번이고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고민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설사 시상이 떠오르더라도 처음 듣는 사람이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진짜 진을 빼는 과정은 다른 데 있다. 예를 들면 새벽 2시까지 이틀 밤을 계속 창작에 몰두할 때다. 그럴 때면 나는“주님, 영감을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곤 한다. 이런 과정에서 배운 것이 있다.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나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해서 영감은 텅빈 마음속에서 불쑥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도와주지 않으신다. 시를 지을 때나 일상생활에서나 결코 그런 식으로는 일하지 않으신다. 수십 년간의 생활 체험에서도 그랬고 특히 20년간의 시를 짓는 체험에서도 그랬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도와주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수고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성경적인 규칙이다.

기도하고 나서 생각하고 창작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바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면 영감이 떠오른다. 그러나 막상 그 영감은 내게 신비하다거나 기적 같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저 고통스럽고 자연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감이다. 왜냐하면 부르짖으며 기도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늘 입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이렇게 되었다고 감사드린다. 시 한 편을 쓰는 데 보통 15-18시간이 걸린다. 시간을 단축해 보려고 매년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그 이하로 줄일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시 쓰는 작업을 어려운 일로 지정하셨나 보다.

성경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13),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전 15:10),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서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등등 여러 곳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일을 맡았다. 기도한다고 해서 맡은 일을 안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도가 일을 대신할 수 없다. 이것이 일하는 분위기요 이렇게 해야만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일할 수 있다. 목회하는 나에게나 일하고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에게나 모두 마찬가지다. “주님, 저에게 영감을 주시옵소서. 내 생활을 통해, 목회 활동을 통해, 진실 되고 아름답고 변화를 가져오는 역사를 이루어주시옵소서.”

기도한 후에는 응답이 온다. 그러나 금세 오지는 않는다. 열심히 생각하고 수없이 썼다가 버리는 습작의 과정이 있어야만 응답이 온다. 인생은 한 편의 시를 쓰는 것과 같다. 인생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시를 적당히 쓰거나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써도 된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당히 쓴 시와 공들여 쓴 시의 효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나님이 아름다운 분이기 때문에 주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인생도 아름다워야 한다. 내가 20년 동안 강림절 시를 쓰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진리는 가만있다가 한 순간에 계시나 영감처럼 신비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나 진리나 깊은 깨달음은 뼈를 깎는 생각과 시련과 기도와 자기 개혁을 통해 온다.

주님, 지금 저는 다시 일터로 돌아갑니다. 제가 열심히 복음을 선포하고 사역을 하겠사오니 이것을 소재로 한 시는 주님이 써주시옵소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