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칼럼[오늘의 말씀] 2017년 07월 21일

말씀을 지키며 사는 유익

“내가 공과 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압박자에게 붙이지 마옵소서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가 나를 압박하지 못하게 하소서 내 눈에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주의 인자하신 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주의 율례로 내게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종이오니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앙의 유익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삶에 담대함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며 살도록 말씀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을 지키고 살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은 자기의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생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호소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인처럼 말입니다. “나를 압박자의 손에 붙이지 마옵소서! 보증하사 복을 받게 하옵소서! 교만한 자가 나를 압박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드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담대함을 잃어버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삶의 동기가 정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닌 자기의 영광과 유익을 추구했기에 담대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삶이 자기의 이기심과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자신을 의지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이렇게 자기를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정말 마음 아파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법도를 지키며 살아가지 않은 한, 이런 식으로 밖에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모든 부요함과 풍성함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뢰할 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시인에게 그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그는 담대하게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이 보여준 기도의 모든 능력과 어두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의 힘은 모두 하나님을 의뢰한 자의 담대한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큰 기도의 능력을 소유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공통점은 은사를 많이 받은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삶이 바뀌어야 기도가 바뀌고 존재가 바뀌는 것입니다.

또 하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의 유익은 하나님의 대적을 자기의 대적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교만한 자, 혹은 압박자로부터 자기를 구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데 이들은 시인의 원수인 동시에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려고 하자, 그것을 방해하는 하나님의 원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지만, 실제로는 아무렇지 않게 하나님의 원수와 손잡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아니면, 주님의 대적을 분명하게 자기의 대적으로 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던 이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주의 종이옵나이다. 그러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옵소서!’ 주의 증거를 더 알고 싶어 한 것은 더욱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종은 이처럼 주인의 뜻을 더 잘 알고 싶어하고, 그대로 그것을 받들고자 하는 자입니다.
[ 경건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