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칼럼[오늘의 말씀] 2018년 01월 19일

십자가를 지기까지

들어가는 말

본문의 배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기 전에 관장에서 그 흉악한 심문을 당하시는 과정입니다.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했다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어떻게 낮아지셨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

무릎을 꿇고 희롱하면서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쓰는 인사말입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폐하 만수무강하옵소서” 하는 그런 정도의 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하라 하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고난을 받으실 때 사람들은 이렇게 장난을 하며 그리스도를 희롱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것은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혈통에서 나셨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한 선택받은 백성의 왕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는 자의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은 자에게도 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의 왕이신 것을 세상은 알 수 없습니다. 각기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고 자기의 사리와 사욕을 따라 살아가는 이 죄로 가득한 세상은 아무리 눈을 뚫어지게 직시한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세상의 왕이고 또한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의 임금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 속에 왕이 되실 때에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그 하나님은 믿는 자녀들 가운데 왕으로 다스리시는 그분이 그 자신의 통치권을 단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나 교회에 한정시키실 수 없는 분이시고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 세상을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는 일들을 보기를 사모하는 모든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왕이 되시고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의 왕이 되심을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희롱하며 무릎을 꿇고 조롱하는 말로 유대인의 왕이여 만수 무강하옵소서하며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이후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자들이 이렇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과 상관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이름을 높이게 될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홍포와 가시 면류관

이 사람들은 희롱하기 위해서 예수 앞에 무릎을 꿇었고 경배하는 마음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홍포를 입히고 멸시하는 이름으로 가시 면류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인 동시에 또한 앞으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던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김을 받으실 위대한 일들을 우리에게 보이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도 복음은 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전혀 상관없고 예수를 전혀 모르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수치와 치욕 가운데서 홍포를 입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고 갈대를 손에 두고 모든 사람들 앞에 웃음거리가 되는 그 모든 잘못된 모습들이 바로 우리의 자유와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속하기 위한 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곳에서는 이렇게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이름을 높이는 일들이 오늘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단 한 분 구속의 예수 그리스도 앞에 그들이 비록 무릎을 꿇고 입술로 주님을 경배했다고 하나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그렇게 한 행동만 하나님께 사용되었습니다. 장난이나 농담이나 그리스도를 희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고백하고 삶으로 무릎을 꿇고 신앙으로 무릎을 꿇은 사람들은 얼마나 복됩니까?

십자가 지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희롱을 받으시면서 드디어 골고다언덕으로 끌려 가야할 시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침 뱉었습니다. 침 뱉는다는 것은 바로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인간들이 침을 뱉는 것은 모두 저주받는 것들에 대한 욕설이고 또 저주가 임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행동하는 표시입니다. 치욕과 멸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침 뱉으면서 저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그 길은 저주의 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고 잠시 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한 번도 떨어져 본 일이 없는 아버지로부터 인간의 죄를 위해 저주를 받았던 것입니다.

인간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멸시를 받았고 하나님께로부터 저주와 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길은 철저한 고독의 길이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세상부귀 안일함과 명성을 원하여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한다면 여러분들은 외로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버려지지 않고 이렇게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의 뒤를 따라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들은 기필코 세상 속에서 외로워지는 일들을 경험할 것입니다.

즐겁게 지고 가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즐겁게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이 사라진다는 의미이거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십자가를 졌다는 이유 때문에 남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쉬운 길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가면 고난보다 넘치는 하나님의 위로와 고통을 능가하는 큰 기쁨과 시련을 능가하는 자유로움이 이렇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의미이지 십자가의 고통이 사라지거나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기 전에 이렇게 침 뱉음을 당함으로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외로워지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이 세상의 대접이요 대우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멸시와 천대와 절대적인 고독에 직면하면서도 여기에서 멈추거나 아니면 이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자기의 가던 길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라도의 관정에서 이렇게 심한 모욕과 멸시와 시련을 당하시면서도 참으시는 이유는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되기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서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채찍에 맞으시면서 채찍을 맞는 순간까지만 참으셨다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옷을 벗기우시고 가시 면류관으로 머리에 씌움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는 멸시의 순간까지만 참았더라도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의 심령이 이 십자가를 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음성을 듣게 되었으면 그 십자가를 지고 그 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그것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그 많은 수고와 인내를 참고 견딤을 지불하면서 여기까지 걸어 왔으니 우리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고 성취하며 마지막에 우리에게 매인 그 십자가를 지고 승리할 그때에만 우리가 걸어 온 모든 인내와 고난과 수고가 의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한때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고 성령과 눈물로 자신의 사명의 길을 출발했지만 마지막까지 인내하고 하나님의 의의 십자가를 지고 이루기까지 성취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많은 수고와 고통과 고난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으로 되어 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참으신 이유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렇게 침 뱉음을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시며 참는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앞에 있는 십자가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성취될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죽음의 십자가를 지나고 나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상급을 그리스도 예수는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를 믿으며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의 진정한 목표와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로 또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만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렇게 고달프고, 신앙을 이어가기 어려운 유혹과 시련이 가득한 세상에서 눈물을 머금으며 참고 잠시 실패하면서도 다시 허리를 동여매고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대로 살려는 우리는 과연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의로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침 뱉음을 당하여 철저한 멸시를 받으셔도 기꺼이 참으실 수 있었던 것은 견딜만한 가치 있는 사명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는 그 십자가 속에서 자신의 죽음 속에서 태어나는 수많은 새 생명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이래 목마르게 기다리던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이 이루어지는 그 거룩한 날을 꿈꾸고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의 푯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이 구원의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에 이전에는 군병과 같은 악랄한 유대인들이 무릎을 꿇고 장난을 치며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했지만 이제는 장난이나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왕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주는 그런 세상이 되기 위하여 산다고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대치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을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견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치욕과 외로움을 견디면서 사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의의 아들이시면서도 불의한 재판에 말없이 승복하시면서 오히려 침묵하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신 것은 신앙적인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길을 가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신앙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태어난 이유를 분명히 깨닫는 것입니다. 처절할 정도로 깨달아서 내가 살아있는 것이 내 인생의 그 목표를 성취하지 않는다면 내 인생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앞에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에 갈대를 드셨습니다. 임금들은 금으로 만든 홀을 들었는데 그 홀은 뻗쳐서 지시하기도 하는 지시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팔레스타인 시궁창 같은데서 나는 갈대였습니다.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을 들고 계셨는데 사람들은 그것마저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때렸는데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계셨습니다. 두드릴 때마다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마를 더 깊이 찔렀을 것입니다. 희롱을 다한 다음에는 다시 홍포를 벗겼습니다. 다시 그 이전의 평복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끌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철저하게 치욕을 당하시고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그 손, 하늘의 높은 보좌 위에서 손을 펴서 온 세상을 다스리던 그 손에 갈대가 웬 말입니까? 고귀하신 머리에 가시면류관이 가당키나 한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고귀하신 몸에 솔로몬의 입은 홍포를 둘러도 어울리지 않을 터인데 사람들에게서 취한 헌옷 같은 누더기를 둘렀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침 뱉고 모욕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고통보다도 더 커다란 마음의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서 있는 이 땅이 누구의 땅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앞에 홍포를 입히고 옷을 벗기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희롱하고 있는 이 사람들을 누가 만드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위해 이 치욕과 수치를 당하고 계신 것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을 그대로 인내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 지는 사람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가 하나님이 인정하는 자에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못난 사람을 들어 지게 하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도록 예수님이 허락해 주신 사람이 아니면 십자가를 질 사람이 없고 십자가를 지도록 허락을 받는 것은 세상에서 명예와 권세를 누리도록 받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을 각오로 살았던 사람만이 예수를 위해서 정말 죽을 기회가 허락되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지고 갈 자격이 되는가하고 시험에 자꾸 떨어지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제사로 드려졌던 수많은 제물들을 보십시오. 그것은 엄격한 검사에 합격한 흠 없는 것들이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처럼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승리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지만 우리의 인생을 통해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고 이리저리 회피하고 도피하면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지연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루어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눈을 들어 우리의 가정과 주위에서 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깊이 묵상하고 나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주위를 깊이 관찰하면서 바라본다면 어느덧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중심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태도가 변하지 아니하고 예수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나는 죽어도 어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나는 망해도 하나님의 뜻이 흥하여야 하리라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사모함이 없을 때 하나님의 계획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존심 다 세우고 자기체면 다 살리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길에서 계속 낙방할 것입니다. 고달픈 인생을 살았지만 그것은 자기가 못나서 당한 고난이었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한 번 예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이런 삶은 거의 살아보지 못하고 인생을 마친다면 정말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는 선택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참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이렇게 비참하게 모욕을 당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가끔 살아생전에도 유대인에게 박해를 받고 욕을 먹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인격적으로 파산 받은 자처럼 유린당한 적이 없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갈 때 그 때까지 예수님은 한마디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그 모든 말도 안 되는 송사와 그 치욕을 다 당하고 침묵했던 것입니다. 할 말 다하고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누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기에 합당한가? 그 사람 앞에는 쓰라린 가시밭길 고난의 발자국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주신 그 거룩한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 아무 것도 개의치 않고 그 십자가를 내게 지어 주실 때까지 참고 견디고 수치를 이기고 입을 봉하며 침묵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러 가기에 합당한 사람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십자가를 지어 주십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에게는 그 고난 가운데서도 그 고난을 고난이라고 느끼지 않는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능가하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십자가를 진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십자가를 지기에 합격 받으시기까지 그 모든 장시간의 희롱과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견디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을 해야 할 때와 말을 할 필요가 없을 때를 잘 분별하셨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맺음말

만약 우리가 내 가정을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하지 않겠는가? 내가 교회를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 하지 않겠는가? 나 아니면 우리 집안을 위해 누가 십자가를 지겠는가? 나 아니면 누가 저 이방의 땅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 가는 자들을 위해 십자가를 질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고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그런 부담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럴 때 부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치욕 속에서 인내하심으로 합격 증서를 받고 십자가를 어깨에 매신 것처럼 그렇게 십자가를 매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경건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