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칼럼[오늘의 말씀] 2017년 06월 27일

주님 자신 때문에 감사합니다

들어가는 말

이 세상의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은 누가 시키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은 사람에게 목에 칼을 댄다고 해서 협박에 못 이겨서 사랑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감사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한다고 해서 마음속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감사는 없는 것을 찾아내어 감사한 것이 아니고 원래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을 못해서이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미국에 설교하러 갔을 때 비행기 안에서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도착해서도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이전 후 교회가 커가고 있던 시기였는데 다음 해에 결정해야할 여러 가지 교회 일들 때문에 걱정되어서였습니다. 그리고는 삶이 왜 이리 고달픈가 하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염려는 하나님께서 목양 받을 교인들을 많이 보내주셨기 때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후에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이 기대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늘 시인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그의 감사의 제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셨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해 주시는 것이 없어도 주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앙생활 잘하고 성령 충만하고 말씀을 고분고분 듣고 헌금할 때에만 “너는 내 자녀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의 유혹 속에 빠져서 죄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하나님이시기를 즐거워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겨우 주님이 우리를 어려움 속에서 건져주시거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 몇 개를 주실 때 우리의 주머니를 보면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가련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관계는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택한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 자신이 그 백성의 기업이 되시는 언약에 기초한 축복이란 말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에서 보면 ‘주’와 ‘하나님’ 사이에 ‘나의’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결국 시인이 지금 찬송하고 있는 하나님이 위대한 조물주, 창조주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세계 속에서 깊이 경험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무리 위대하고 높고 사랑이 많으시다 하고 온 세계를 지배하신다고 고백하여도 그것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인격을 깊이 체험하는 신앙생활에 도움이 안되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우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깊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아주 힘듭니다. 그것은 잠시 기쁜 것일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기쁨과 감격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금방 익숙해지고 감사의 마음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에 대한 경험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연애에 빠졌을 때 상대방의 나쁜 조건만 이야기하며 도대체 그 사람의 어떤 점이 좋아서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냥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아주 작은 것 하나를 주셔도 감사하는 것은 선물 그 자체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들, 우리가 그 동안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취업의 기회를 주시고, 건강도 주셨고 어떤 이들에게는 오랫동안 가슴에 박혔던 못을 빼어 주셔서 가족 중 몇을 구원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실직을 당하거나 사업의 어려움이 있어서 고난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통해서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입고 쓰고 마실 모든 것들도 주님이 공급해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여기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하나의 매개체에 불과 합니다.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아주 작을 것을 보면서 그 뒤에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시편 103, 106편에서는 계속해서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베풀어주신 가장 커다란 감사의 제목이 무엇인가라고 우리에게 물을 때 그것을 일일이 댄다고 하는 것은 너무 시시한 것입니다. 첫째는 숫자적으로 너무나 많고, 두 번째로는 다 헤아린다고 하더라도 빠뜨린 것이 있을 것이고, 세 번째로는 아무리 많은 것을 헤아려도 결국은 하나님이 자신이 빠지고 나면 그 헤아린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자랑거리가 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오늘 내 삶 속에서 경험되고 하나님이 나와 언약으로 관계를 맺으셔서 언제든지 내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가족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으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주신 이가 모든 것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그 분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깊이 경험되면 우리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주시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받아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매개체로 주님 자신을 깊이 경험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73편에서 시인이 “주 밖에는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 “여호와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라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주신 가장 커다란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 그래서 우리는 올 한 해동안도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았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가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릴 때에도 가장 큰 은혜로 다가왔던 것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셔서 언제든지 우리들이 무릎을 꿇을 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모두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을 주셔서 그의 증거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붙들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비록 거미줄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살았어도 이 세상의 파도에 완전히 휩쓸려 가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주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계속 유지하게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이 조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이유를 이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겠습니까? 돈 버는 재미는 그 사람들도 알고 우리도 알고 이 세상의 즐거움을 맛보아서 기쁜 것은 그 사람들도 경험하고 우리도 경험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자신을 경험하고 그 하나님 때문에 만족을 누리는 이 기쁨은 신앙을 가진 우리 말고 누가 그 기쁨을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셨다는 사실, 하나님이 거기에 계셔서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신앙의 상태와는 상관이 없이 언제나 동일하게 우리의 아버지 되어 주셨다는 사실 때문에 한없이 감사한 것입니다. 모든 감사의 조건, 1년 동안에 일어난 모든 기쁜 일들, 모든 행운 한가운데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한 축복들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정하든지 하지 않든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살면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으면 주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모든 좋은 것을 주실 때 만족을 누리지만 하나님이 정작 우리에게 주시고 싶으셨던 ‘하나님의 자신으로 말미암는 기쁨’은 우리의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우리에게 한 해 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돌아보면서 한번쯤은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었고 고통이 있었지만 그 자체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시기 원하셨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그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으로 그 어려움들이 고난 받는 고통으로만 작용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만드시는 기회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주님 밖에서 살아가는 형통하는 삶보다는 훨씬 행복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뼈아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주님의 등 뒤에서 웃는 것보다는 훨씬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오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감사와 소망 마지막으로 성경은“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라고 합니다. 이것은 병행구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그 자체가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며 주님의 크신 은혜를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깊은 확신을 갖고 주님을 깊이 경외하면서도 주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주셨다는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높일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를 확인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기뻐하게 됩니다’ 라는 고백이 진실한 신앙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주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감사하는 자의 삶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다,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나 크다’라고 하는 감사의 은혜를 간직한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 한 번 살고 싶은 소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한없이 감사할 때에 그는 주님을 높이면서 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나는 낮아져도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에서 현저하게 부족한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탁월한 열심입니다. 우리 안에서 이러한 것들이 끊임없이 솟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어디에 가든지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이 주님께 기쁨이 되고,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실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고백이 진정으로 감사를 아는 신앙생활입니다. 맺는 말 이제는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미친 사람들처럼 느껴져야 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라고 의식적으로라도 많이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목표 자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주님에게 기쁨이 될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마음에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살면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래서 오히려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 너무나 큰 소원이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좋아하고 하나님이 기쁘시다면 저도 기쁩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 이것이 진정으로 주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신앙생활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피할 수 없이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받아야 되는 갈등이라면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주님이 우리를 충성되이 여기셔서 그 자리에 세우시고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을 인해서 마음껏 주님을 찬송합시다. 우리의 온 마음을 열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우리의 우리 되게 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주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셔서 누리게 하셨은즉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것이 없다고 고백합시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경건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