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칼럼[오늘의 말씀] 2017년 04월 26일

양수리에서 생긴 일

지금으로부터 이십 오 년 전의 일이다. 함께 어울려 지내던 친구 하나를 잃었다. 그는 2대 독자였는데 경기도 양수리에서 물에 빠져서 죽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던 친구들이 모아 준 돈을 가지고 한 친구와 함께 양수리까지 가서 묘비를 맞추었다. 내 손으로 비문을 쓰고 그 글씨대로 돌에다 새겨달라고 주문을 했다.

석재 공장 주인에게 반들반들한 돌을 비석으로 쓸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값이 너무 비싸니 둘이서 직접 갈아 보라고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돌 공장 처마 밑에 앉아서 우리 두 사람은 연마용 숯돌로 커다란 돌 판을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점심때부터 오후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갈았다. 구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산마루에 걸린 해가 떨어져 드넓은 강물을 붉게 물들일 때쯤 나는 우리 앞에 놓인 돌을 보고 놀랐다. 물로 닦아 내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거두고 나니 정말 우리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거리는 비석이 되었다. 지금도 양수리를 지날 때면 그 일이 생각이 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격을 다듬으시는 데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나 고통스러운 시련, 내 맘대로 쉽게 되지 않는 인간관계 같은 것들은 정말 좋은 연마제이다. 채석장에서 막 떠 온 돌멩이 같은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거룩한 사역에 합당하도록 갈고 닦으시는 데는 사람들과의 부딪힘이 연마제로 잘 사용된다.

어떤 자매들은 불같은 시집살이를 통해서 교만하고 모난 성품이 온유하고 친절한 성품으로 바뀌기도 하고, 어떤 형제들은 직장에서 만나는 까다로운 상사들을 통해서 겸손을 배우기도 한다. 어떤 성도들은 제 고집대로 살아가려는 자녀들을 위하여 노심초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깊이 의뢰하는 신실한 인격으로 변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하여 잊지 말아야 사실이 있다. 고통 받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고난을 통해서 인격과 성품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성품과 인격을 깎고 다듬어서 온전하고 거룩한 사람을 만드는 것은 고통이나 고난, 피곤한 인간관계 그 자체가 아니다. 그 고난에 대한 우리의 경건한 반응이다. 이 점에 있어서 시편 119편은 값진 교훈을 준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난당한 것이 그의 인격과 신앙에 영향을 주었는데, 이는 그가 고통 가운데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고통과 연단만 있고 이에 대한 경건한 반응이 없으면, 그 고통 속에서 오히려 더 이상하게 굽고 한 맺힌 성격을 가진 패역한 사람으로 변해 가기 쉽다. 그리하여 이윽고 ‘인성에 있어서 질병적 결함’을 가진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들이 고난 받을 때에 특별히 경건한 은혜의 물에 자신을 담가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 경건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