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칼럼[오늘의 말씀] 2017년 10월 18일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린 교회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린 교회

얼마 전의 일입니다. 백화점 앞을 지나는데, 개점시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문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특별한 할인 행사가 열리나 보다 하고 지나치려는데, 왠지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추위에 떨면서 개점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예배를 드릴 때면 언제나 시간에 쫓기기 일쑤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시간은 점점 더 짧아져가고, 순서는 점점 더 복잡해져 갑니다. 이제는 소수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모든 예배순서를 약 한 시간 십 분 만에 마칩니다. 언제나 주일 예배는 정해진 시간에 시작해서 예정된 시간에 마쳐집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회중들의 모습에서는 진리에 대한 충만한 인식으로 인한 감격이나, 험악한 세상을 이길 신령한 힘을 공급받은 용사다운 결의 대신 "아, 예배가 끝났구나."하는 해방감만이 읽힙니다. 이렇게 형식화된 예배의 문제야 말로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사라진 예배는 모든 방종한 삶의 원인이 되어 왔으며, 하나님의 살아계신 임재를 느낄 수 없는 형식적인 예배야말로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는 요인이 되어 왔습니다.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보답하는 문안인사나 기념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만남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함으로 그의 백성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도 확인받게 됩니다. 왜 똑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지에 대해서 예배를 통해 대답을 듣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 뒤에는 참된 예배자가 있다. 오늘날 조국교회가 봉착해 있는 형식화된 예배의 이면에는 형식화된 예배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앞에서 먼저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격차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을 깨트려야 합니다. 그것 없이는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열납 되는 예배 뒤에는 언제나 예배의 정신에 부합하게 살아가는 삶이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의 예배도 받으십니다. 그 사람이 예배에 어울리는 삶을 살지 못한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마음 아파하며 상한 심령으로 예배드린 다면 말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예배자가 소유해야할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을 체험하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가 예배의 정신에 합당한 자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이 정말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만한 예배자의 삶인지, 자신이 정말 올바른 예배의 정신을 소유한 참된 예배자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자가 되기 위한 노력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로운 감격이 있는 예배에는 항상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힘이 하나님께만 있고, 그러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구체적인 지식도 예배 가운데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늘 예배를 위해서 기도했고, 예배 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예배 속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나, 끝나고 돌아갈 때나 언제나 우리의 최대 관심은 삶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깨닫는 일이 귀한 것은 지식 자체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실천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배자는 예배를 마치고 교회당을 나설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에 대하여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자기의 삶에 대해서 결단하는 자기 쇄신이 없는 예배는 고등한 종교적 유희에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즉,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참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깨닫고 실천하고자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회중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서는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진 피조물이기 때문에 피곤할 수 있고, 너무 힘들면 졸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입장일 뿐, 하나님 앞에서 에배시간에 조는 행위는 심각한 신성모독입니다. 더구나 만약 이런 일이 한 번이나 두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같은 시간에 되풀이되고 있다면 이것은 육체의 문제가 아니고 영혼의 문제입니다. 영적인 상태가 심히 침체되어 졸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하찮게 여기지 말고, 최상의 몸과 최상의 마음 그리고 최상의 정신을 예배에 바칠 수 있도록 구별하는 일에 진지한 열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더불어 참된 예배자는 말씀을 듣되 자기가 듣기 좋아하는 말에만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예배를 드리다 보면 가끔 자기가 듣기 좋아하는 내용의 말씀을 미리 정해 놓고 나온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정답을 모두 준비하고 나와서 예배 시간에는 설교를 통해서 그 정답을 맞추어 보려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단지 옳았다고 인쳐 주는 것에 그친다면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그 말씀을 통해서 바뀔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살찌게 할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무엇이든 말씀 하시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의 자세로 예배에 나와야 합니다. 또한 예배자는 설교자에 대한 인격적인 흠을 빌미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므로 매우 특별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설교를 하나님 말씀되게 하는 것은 설교자의 인격이 아니라 그 설교의 내용입니다.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설교에 거룩한 삶으로 주석을 달도록 힘써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설교자의 인격적인 흠이나 생활의 결함이, 성도들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주거나, 성도들로 하여금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의무를 해방시켜 주는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에게 느끼는 섭섭한 감정이나 실망하는 마음 기타 여러 가지 외관적인 이유를 들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야 할 의무들을 벗어나 배역하는 것은 올바른 예배 정신에서 우러난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모든 마음의 시험을 극복하고 오히려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직접 뵈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의 정신입니다. 예배의 회복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한 거룩한 진리에 사로잡힌 설교자와 예배를 통한 하나님을 갈망하는 예배자들과 그들의 만남에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없이는 거룩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감격적인 예배 없이는 거룩한 성도의 삶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른 땅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슴 속에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참된 부흥을 주시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참된 예배가 무엇이며 참된 에배자가 무엇인지 논쟁할 필요 없이, 그 거룩함을 예배를 통하여 직접 체험하도록.........
[ 경건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