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칼럼[오늘의 말씀] 2017년 09월 22일

삶은 설교의 주석

세례 요한의 인격의 탁월성은 그의 검소한 삶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는 자신이 선포한 대로 산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히 설교자가 자신이 설교하는 것을 절반만 살아도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설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삶의 반영이어야 하고 최소한 그의 삶 속에서 빚어지는 고뇌와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삶과 동떨어진 설교는 결코 오래 갈수 없습니다. 설교자의 삶은 강단에서의 설교에 대한 주석입니다. 비록 강단에서의 말이 어눌하여도 삶이 훌륭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쓰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여전히 필요한 감화를 끼칩니다. 삶으로 설교하는 설교자는 비록 그의 말이 화려하지 않아도 설교의 색깔이 빛바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이 설교를 빛나게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서의 말이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삶으로 그 아름다운 설교에 대한 주석을 훌륭하게 쓰지 않는다면 그의 설교는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설교는 즉석에서도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선포대로 사는 인격적인 삶은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말의 잔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고상한 말은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세대에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말을 모르던 선조들이 오히려 그 말에 합당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여러분들이 접하게 되는 것은 아마 논쟁하는 정신일 것입니다. 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이제는 논쟁하며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학을 배울수록 예전의 겸손을 잃어버립니다. 배울수록 말이 많아지고 더 많이 선생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 만큼 자신의 인격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성찰하고 경건한 신앙의 선배들 앞에서 가르침을 받을 기회는 드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 수업 중 이러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또한 부하기를 탐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기대하는 것은 도적에게 자비심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부요하심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시고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 고통 받으신 것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이 당신이 구원하여야 할 백성들이 경험하는 모든 결핍과 고난과 고통과 위기를 한결 같이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더더욱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 지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비교적 넉넉한 물질을 향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빈곤한 다수가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검소한 물질생활이 우리의 신앙 인격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도록 자신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온갖 악의에 찬 도전 앞에서도 담대히 외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설교의 내용만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그 선포대로 산 삶과 강직한 인격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런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그가 비록 인격적으로 완전한 사람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선포는 그의 삶의 방향이었고 그의 설교는 인격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외침이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고식적인 가르침과 구별되게 만든 것도 그러한 인격과 삶이 설교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는 세상에 사랑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땅에는 그가 애착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두 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가온 하나님의 왕국을 향하여 고정되어 있었고 그의 삶은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거룩하고 의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는 선포하기 위하여 살았고 사는 것처럼 선포했습니다. 거룩한 정염으로 마음속에 부어진 진리를 외쳤고 그 외침은 인격 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그의 부르짖는 광야의 외침은 곧 그의 삶이었고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실현되기를 원하는 그러한 생활이었습니다. 조국 교회가 목 놓아 기다리는 사람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신학교 시절에 인격적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닮도록...
[ 경건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