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은 특별한 소명으로 신학의 길에 입문해 목회를 수행한다. 하지만 강렬한 소명 체험이 그의 목회 인생 전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하면 목회와 신학에 균형을 이루며 사명자의 길을 지속할 수 있을까.
최근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생명의말씀사)’를 펴낸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는 29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목회자들은 신학의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사랑과 지식의 영역에서 꾸준히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은 신학 공부에 대한 김 목사의 식견을 총망라했다. 성경과 신학, 역사와 철학, 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학문의 지평 속에서 구도자적 심정으로 기록했다. 직접 읽고 참고한 책만 340권에 달하며 4년에 걸쳐 집필했다. 2권의 시리즈 중 첫 책이다. 평신도가 읽어도 좋을 만큼 광범위하다.
-책을 쓴 이유가 궁금하다.
“이야기는 14년 2개월 된 한 소년의 통곡에서 시작한다. 소년은 난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교회에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소년은 결국 무신론자가 된다. 데카르트 칸트 니체를 읽고 문학에 심취한다. 그렇게 7년을 살다 다시 주님께 돌아온다. 하지만 교회엔 생각하는 신자들이 없었다. 예수를 믿어야 할 절체절명의 물음도 없었다. 소년은 바로 나였다. 나는 그 소년의 질문에 기독교가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학이란 인류가 알아야 할 삶의 지혜다. 나처럼 고통 받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신학을 할 것인지 풀어냈다.”
-신학 공부는 신학교 때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 않나.
“사명과 은사를 생각해 보자. 모두가 전도의 은사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전도는 사명이다. 목사에게 있어 지적 능력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분량만큼 지적 탐색에 임해야 한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신학생 때 공부를 못했는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목회자는 신학자가 돼야 한다는 말도 있다.
“모두가 학자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학문인(學問人)’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학문인이란 영어로 ‘아카데믹스(academics)’이다. 목회자는 학문인이 돼야 한다. 목회자는 진리를 가르치는 일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신학 분야와 일반 학문 안에서 어떻게 진리가 작용하는지 원리를 터득해야 한다. 목회자는 신학의 제 분야는 물론이고 문학 철학 과학 경제학 등의 일반 분야도 살펴야 한다. 그래야 교회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답을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공부해야 하나.
“신학교에 입학한 때부터 담임 목회를 하기 전까지 신학공부에 몰입하는 시기가 필요하다. 최소 5∼10년은 돼야 한다. 건강에 위협을 느낄 정도까지 성경과 학문 탐구에 정진해야 한다. 나의 경우 신학대학원(신대원) 시절 하루 16시간을 공부했고 기도에 전념했다. 요즘엔 쉽게 공부하고 쉽게 목사가 되는 것 같다.”
-목사님의 영적 스승은 누구인가.
“총신대 신대원 시절 고(故) 김희보 교수와 고 이상근 교수다. 김 교수는 항상 공부하는 자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신학책이 아니라 성경이었다. 그는 설교 때마다 원고 없이 낡은 성경 한 권을 두 손으로 겸손히 받쳐 들고 강단에 섰다. 이 교수는 그의 재산을 학교와 신학생을 위해 사용했다. 땅 문서를 팔아 직원 월급을 주는 데 사용했던 일화도 있다. 이 분들은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경건하게 신학을 공부하며 실천했다. 일생에 깊은 영향을 미친 신학자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장 칼뱅, 존 오웬과 조너선 에드워즈 등이 있다.”
-평소 목회와 신학의 조화를 강조했다.
“신학을 하기로 한 사람들은 피상적이 돼서는 안 된다. 주님을 깊이 만나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운명적 사명에 사로잡혀야 한다. 그 다음이 공부다. 학문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진리대로 살려고 몸부림쳐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이어야 한다. 기독교의 힘은 무엇인가. 사상과 윤리의 힘이다. 사상은 지성, 윤리는 의지인데 이 둘을 묶는 게 하나님의 은혜다.”
-목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맹자의 ‘등문공(?文公)’ 하편을 인용하고 싶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집에 살며 가장 올바른 자리에 서며 가장 큰 길로 걸어가나니,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그 길을 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그 길을 가나니 부귀가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빈천이 그의 뜻을 옮기게 하지 못하며 위협과 무력이 그를 무릎 꿇게 할 수 없나니 이런 사람을 일컬어 대장부라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존재의 울림으로 살아야 한다. 혼자 살아도 이 길을 가야 한다. 그게 목회자의 일이다. 교인이 한 명도 없어도 진리는 전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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