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 저는 아침마다 두려움 속에서 눈을 떴습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가기가 두려웠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신은 존재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해 보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피상적으로만 교회에 다니던 저는 고민과 방황 끝에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책읽기’는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문학작품을 읽으며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저처럼 아파할 뿐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물한 살 때 회심을 하고서야 삶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 유순한 지성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거대한 사상입니다. 오늘날 불신자들에게 목회자는 사업가처럼 보이고 기독교인들은 기회주의자처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에는 진리에 자신의 마음과 삶을 합치하고자 몸부림치지 않는 나태함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정한 힘은 성경의 진리를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것은 그 사상을 따라 살아가는 힘입니다.
어떤 설교는 설교자가 자신의 종교로 유인하거나 혹은 자신의 종교를 믿도록 협박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또 어떤 설교는 인생과 세계를 보는 웅장한 시야를 열어 보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설교 속에 사상이 담겨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사상은 사람이 그것을 따라 생각하고 살며 혹은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의 토대를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의미와 단절된 내용을 단 한 줄도 전하지 않습니다. 모든 내용은 하나의 웅장한 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이 온 세계와 인생의 의미와 연관돼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선교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진리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인간을 중심으로 삼고 인간의 행복을 최종적인 가치로 여깁니다. 모든 사물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의 권한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권하는 전도의 말은 아무런 설득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행복으로 유인하는 이야기나 듣는 사람의 반응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외침이 아니라 온 지성과 의지를 동원해서 이 세상의 불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답을 제시하도록 정신적으로 학문적으로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끊임없이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고 우리의 전도에 복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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