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구 ]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행 20:19)
[ 내용 ]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참고”입니다.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격파하고” 내지는 “유대인들이 나를 박해했으나 모두 때려눕히고”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불같이 올 곧은 성격의 바울과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는 사랑의 무저항주의자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선지자들을 보내실 때 가지셨던 마음이었습니다. 패역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릴 선지자들을 보내시면서 하나님은 무엇을 들려주셨습니까? 최신 병기를 들려주시며, 그들이 너의 말을 듣지 않고 나를 계속 거역하면 모두 쏴 버리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으로 인해 아파하고 분노하시면서도, 선지자들에게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칼 한 자루 없이, 오직 말씀만 주어 보내셨습니다. 들으면 다행이지만, 안 들으면 그 악한 백성들의 손에 맞아죽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선지자들이 피 흘리면서 죽어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꾼들에게 심어준 사랑의 무저항주의입니다. 주님 자신은 당신을 거스르는 자들을 의로 징계하실지라도, 그 분의 일꾼인 우리에게는 그런 권세가 없습니다.
10여 년 전의 일로 기억합니다. 고린도후서를 읽다가 큰 감화를 받았습니다.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12:11-12). 이것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권 자체를 뒤흔들어 놓음으로서 그의 가르친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려 하자 바울이 자신을 변호한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도된 표를 그들에게 보이는데, 그 가장 우선적인 표가 참음이었습니다. 참음이 사도됨에 있어서 표적과 기사와 능력보다도 더 우선적인 증명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참음의 근본적인 동기는 그가 만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영혼들에 대해서도 깊은 사랑을 우러나게 했고,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참음이야 말로 자신의 사도된 가장 결정적인 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 참음을 삶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내신 분은 바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많은 고난과 괴로움을 당하셨지만 그 분은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던 그 분이건만, 오직 하나님을 드러내는 데에만 사용하셨을 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이적을 행하신 적은 없으셨습니다.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온 무리들이 당신을 잡아갈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계셨습니다. 오히려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떨어진 귀를 붙여주시는 데에 기적을 사용하실 뿐이었습니다. 그 분은 당신의 몸이 채찍질로 찢어질 때에도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가셨던 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야할 사명자의 길입니다.
[ 묵상 ]
사명자의 삶은 “사랑의 무저항주의”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는 한없이 참고 또 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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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100일 교리 묵상: 은혜와 사명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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